거인들의 발자국 31. 행 8:9-25. 왜 성경은 우리에게 끝임 없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할까?
2022.08.24 20:03
예수인교회
행 8:9-25. 왜 성경은 우리에게 끝임 없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할까? 찬 182(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사도행전 28장’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말씀은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전체의 말씀도 이와 같은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데, ‘1장부터 7장’까지는 성령이 ‘예루살렘’에 임하시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그리고 ‘13장부터 23장’까지 ‘사도바울’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충만 가운데 부흥을 하자,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한다’는 성령의 말씀 잊고, 오직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중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갔습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받고 버림받은 ‘사마리아’는 결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 않고, 구원받지 못할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사마리아 지역은 세상과 타협해서 하나님 백성의 순수함을 버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빌립’을 통해 복음이 사마리아까지 전파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원어 성경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직역을 하면, 그 뜻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도들은 사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가고, 더구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에 사도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에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하심은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식 그리고 생각의 틀을 뛰어 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없다고 할 때, 성령께서는 그 환경과 조건이 아닌,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그 환경과 조건을 뛰어 넘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전 시간에 살펴본 말씀처럼,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교회에 큰 핍박과 환란이 닥쳐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의 환경을 뛰어 넘어, 그것을 통해 ‘디아스포라’, 즉 복음이 세계로 퍼지는 계기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과 ‘상황’을 보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만들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닥치고,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 문제와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나의 삶에 말씀과 기도로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을 보면,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처음 한 것은 바로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한 사람의 가장 ‘큰 믿음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순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헬라어 성경을 통해 보면 이 말씀 가운데 ‘즉시’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사도들은 ‘즉시 순종해서 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명령하시니까, 오직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즉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능력’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형편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 가운데, 고통 가운데, 질병 가운데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이유는 단순한 나의 삶의 문제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 바로 복음을 전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갈망하면서, 정작 그 삶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 9절부터 나오는 ‘시몬’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시몬’은 성령충만한 사도들이 행하는 기적을 보면서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잘 사용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자신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사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팔라고 말을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기적과 은혜를 단지 내 삶의 문제 해결, 질병의 치유를 위해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바라보고, 고난을 바라보고, 질병을 바라보면서, 단지 내 삶이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 만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삶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적과 축복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