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28 행 7:44-53 고장난 생각

2022.08.19 10:2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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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28  행 7:44-53  고장난 생각   찬191/427 내가 매일 기쁘게

처음 바퀴는 나무바퀴였습니다. 이것이 쇠바퀴가 되고 다시 고무바퀴가 되기까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심리학자는 고정관념을 “고장난 생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앙생활도 오랫동안 쌓여진 고장난 생각을 깨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스데반의 설교내용이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고장난생각은 “성전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44-50

    먼저 왜 스데반이 이렇게 귀한 설교를 해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에맞아 죽었을까요? 그것은 두가지 메세지 때문이었습니다.(행6:14) 하나는 성전을 헐어야 한다는 말과, 다른 하나는 모세의 율법을 고쳐야 한다는 말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것은 이 두가지 모두 사형죄에 해당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먼저 성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봅시다. 행7:44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 살 때에, 그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 모세가 본 모형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성전이란 하나님이 설계하고 직접그곳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솔로몬도 성전 건축에 집착했던것입니다. 이 생각이 무려 3000천년간 쌓여 그들에게 고정관념이 된것입니다.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 스데반은 구약의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49-50절)하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집에 거할수없다고 말합니다.(48절). 솔로몬도 이점을 알고 성전을 짖는 목적을 그저 예배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대하2:6) 즉 이들의 성전을 향한 생각이 “고장난 생각”이란걸 꼬집은것입니다. 이걸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의지했던 아브라함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다는것입니다.(행7:2) 요셉을 비유로 들며 그가 애굽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었다는걸 말합니다.(행7:9) 그리고 모세의 이야기를 한이유는 그가 광야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다는걸 말합니다.(행7:33) 즉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을 통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걸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것은 오늘날 우리도 이와같은 고장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부부가 교회에 가는 차안에서 다투었습니다. 근데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당신 예배 마치고 보자” 부부는 애써태연합니다. 그리고 예배 마친후 집에 가는 차에 타자 마자 “아까 어디까지 싸워지?” 하며 다시 다투기 시작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과 하나님을 성전에 가둬둡니다. 교회에서 예배가 마치면서 휴 이제 끝났다. 하나님 bye, 성경책 bye. 일주일후에 보자. 딱 일요일 그것도 교회 있는 시간만 신앙생활이라 정의하며 이중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럴때 우리는 기억해야 할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장난 생각을  위해 역사를 보면 스스로 성전을 깨뜨렸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포로기때 솔로몬성전을 깨뜨렸고, 신약때는 성령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를 깨뜨렸고, 현대에 와서 코로나를 통해 교회예배를 깨뜨리셨습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가정에서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뜨겁게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는것, 이것이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신앙입니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계속 리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새벽예배를 뜨겁게 드리고 학교를 다녀오는 아이들에게 꼭 물어봅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그럼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늘 마지막에는 한가지를 묻습니다. “그럼 그친구는 예수님 믿니? 복음은 전했니?”. 오늘 우리의 고장난 생각을 깨뜨리고 일터와 학교와 만나는 그곳을 성전삼는 믿음의 거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고장난 생각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51-53

   스데반은 설교를 계속하며 두번째 포인트를 말합니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이표현은 당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자들에게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데반은 7장 2-4절에서 아브라함 일행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떠났지만 가나안까지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렀던걸 지적합니다. 9절을 보면 요셉에게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말씀했지만 혈육인 동생마져 시기질투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걸 고발합니다. 23-29, 35-36절을 보면 모세를 통해 동족을 돕고 구원하려 했지만 거부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39-43절에는 광야에서 불순종하여 우상숭배한것과  48-50절에는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성전의 잘못된 신앙을 말한것입니다.  52절에 결국 이스라엘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죽인 불순종의 사람들인걸 고발한것입니다. 놀라운 설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민낮이었고 동시에 이것이 이시대, 우리 신앙의 현주소란 점입니다.       

  저는 8년전 개척할때 한 성도가 그런말을 했습니다. “전 정말 건강한교회를 찾고 있어요. 이시대에 거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를 원합니다”. 그런데 얼마안있어서 교회를 나갔습니다. 이유인즉, 자기는 여유있고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매주일마다 설교를 들으면 삶을 바꾸고 변화되야한다는 부담감이 싫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찰스 스윈돌 목사님에게 한 청년이 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교회에서 상처입고 나왔습니다. 정말 좋은 교회가 있다면 소개시켜 주십시오.” 그랫더니 “그런 교회가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게, 나도 궁금하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만약 그런교회가 있다면 자네는 그교회를 가면 안되네, 자네가 가는 순간 그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네” 말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지 않으면 이땅에 좋은 교회란 있을수없습니다. 우린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를려고 노력하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반대입니다. 사랑해야할것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용서해야 하지만 용서하지 않고, 전도해야하지만 전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실체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를 죽인것은 로마제국의 시저황제나 군병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며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를 팔아넘긴자도, 예수를 못박은 자도, 전부 예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스데반의 설교는 2천년전 바리새인을 향하며 동시에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입니다. 이 “고장난 생각”이 깨져야 성령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는 가정을 이끌 능력도, 힘도 지혜도 부족합니다. 학교로 나갈때, 직장을 나갈때 성령님이 힘주셔야 합니다.” 이런 간절함과 갈급함이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오늘도 우리의 고장난 생각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의 도우심을 붙잡으며 복된 주일을 준비하는 사도행전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우리의 신앙이 교회를 넘어 가정과 일터와 내 삶에 만나는 모든 영혼을 향해 뻗어나가게 하소서, 말씀을 따르지 않는것은 세상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인것을 알고 날마다 십자가앞에서 살게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13곳/ 모든예배와 주일을 위해) 모든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에게 힘주시도록, 우리의 주일예배/ 새벽예배/ 목장예배가 삶속에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되고 말씀이 삶이 되고 삶이 말씀이 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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