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24 행5:33-42 화를 멈추는 사람
2022.08.12 09:39
예수인교회
거인들의 발자국 24 행5:33-42 화를 멈추는 사람 찬151/통138 만왕의 왕 내 주께서
4장과 5장은 성령받은 증인들안에 일어나는 시험과 유혹과 핍박에 대해 기록합니다. 특별히 성령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넘어질수있는것이 “화”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3종류의 화내는 사람들을 통해 무엇이 화를 나게하며 그 화를 어떻게 하늘의 기쁨으로 승화시킬수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첫째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을 봅시다. (33)
행 5: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이들은 격분했다고 표현하는데 현대어 성경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표현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들이 한 말때문이었습니다. 행5:30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화나는 두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는 “죄의 지적”입니다. 누군가 나의 죄를 지적할때 기분좋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꼬투리 잡았어? 너는 잘하나 보자” 이런 마음으로 공격하는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도들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한것입니다. 이것이 기분나빴던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켰다”는 표현입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의 특징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도 틀렸고, 이들의 신앙도 잘못됬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신앙을 이끌어줄 교단 총회장과 담임목사님에게 당신의 신앙이 잘못됬다고 말한것입니다. 얼마나 모멸감을 줬을까요? 몇년전 한국에 동성애문제와 차별금지법, 그리고 신앙의 좌파와 우파로 편가르기가 심해져서, 교회나 회사나 어느곳에서나 싸움이 잦을때, 한 유명한 목사님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이럴때일수록 예수님을 더욱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우리의 죄를 회개할것입니다.”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수백명의 비판글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좌파냐 우파냐”,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입장을 똑바로 해라”, 너는 잘했냐? 무슨자격으로 그렇게 말하냐?,” 등등 결국 이 목사님은 사과문을 올리고 무마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31절을 후반을 보면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사함을 받게 하려고 이 말씀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정죄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피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살리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으로 비유하며 우리의 골수와 심령을 쪼개는 수술용칼로 비유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억울하고 속이 상하고 듣기 힘든 말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화가 아니라 은혜를 고백할수있게 될것입니다. 오늘도 가정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를 고백하는 사람이 됩시다.
둘째 “화를 멈추는 사람”을 봅시다. 34-39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화를 멈추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5:34-35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십시오 여기서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당시 가말리엘 학파를 만들정도의 영향력있는 현인이었습니다. 엘리트였던 바울도 그 학파의 제자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한마디로 화난 사람들을 잠재웁니다. “이스라엘 동포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십시오.” 여기서 이스라엘 동포여러분이란 표현은 원어를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여”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성민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여부를때 쓰는 특별한 호칭이었습니다. 화가난 사람들에게 이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차를 고치러 가기전에 가격을 물어보고 갔는데 사장님이 저를 못알아보고 가격을 더 비싸게 불렀습니다. 화가 나서 따질려는데, 갑자기 절보더니 웃으면서 “혹시 목사님이세요.” 얼굴인상에 써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올라오는 그 순간 “아 네..“ 하며 화를 가라앉히고 “근데 가격이 아까 전화 가격과 좀 다르네요..“ 내 말이 차분해 졌습니다. 내가 누군지 깨닫는 순간 화가 조절되었습니다. 삼상 25장에 나발이라는 부자에게 다윗과 그 군대가 먹을것을 구할때 나발은 미련하여 다윗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에 화가난 다윗은 단번에 나발을 치러 달려가는데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을 세우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여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실것입니다. 나발과 같은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이 한마디가 다윗의 노를 잠재웠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지혜가 있길 기도합시다. 또 하나는 35절 후반부에 “조심하라” 말합니다. 말로 어떤 결정을 내릴때는 조급하거나 갑자기 내리지 말고 항상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두가지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 하나는 4세기경에 발생했던 드다의 사건입니다.(36절) 다른 하나는 유다가 일으켰던 구테타입니다.(37절)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스스로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즉 가말리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제풀에 없어지든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거역 할 수 있다는걸 말해줍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때, 화가날때, 답답할때, 속이 상할때 등등의 일을 당할때 사람의 일이라면 시간이 흘러 없어질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주신거라면 화낼일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다려보면 알수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부부관계, 자녀관계, 친구관계에 이런지혜가 있기를 기도합시다.
셋째 “화를 기쁨으로 바꾸는 사람”을 봅시다. 40-42
행 5:40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 주었다 여기서 사람의 악함을 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가말리엘의 권면을 듣고 깊은 깨달음을 받았지만 결국 자존심 때문에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며 돌려보냅니다. 이채찍은 40에 하나감한매로 한사람은 등을 벗기고 두갈래 또는 세갈래의 채찍을 등에 때리는데 피와 살이 터져나옵니다. 그때 한명은 그숫자를 세며 대제사장은 말씀을 읽습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으로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신28:58,59) 한쪽에서는 피터지게 때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정말 화나는 사람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들이었습니다. 근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행5:41″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 공동번역을 보면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의회를 물러 나왔다.” 자신이 당한 이 화나는 일이 특별한 일, 특별한 자격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합니다. 기뻐했다는 표현도 의지적으로 그것을 기쁘게 생각했다는 의입니다. 우리 나라에 마포삼열이라는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1890년에 평양에 온 미국 선교사였습니다. 근데 그의 원래 이름은 “마펫 세뮤얼”이었는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하여 한국이름으로 바꾸어준 것입니다. 그의 얼굴에는 큰 활자국 같은 흉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방전도를 할 때에 어느 술 취한 사람이 술병을 깨뜨려서 던졌는데 그것이 얼굴에 맞아 생긴 상처였습니다. 옛날에는 수술하는 재주가 좋지 않아서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실 그걸 볼때마다 조선사람들에 대해 화가 날만도 했지만, 그는 이 상처자욱이 오히려 영광이 됬다고 합니다. 왜냐면 설교를 들을때마다 사람들은 그 흉터를 물어보았고 그것을 설명할때마다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특별한 훈장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받은 수많은 고초와 상처를 “그리스도의 흔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처이고, 억울함이고, 화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상처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상처를 별로 만들어 세상을 비춰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거인들을 보며 억울함과 답답함과 수치와 모욕을 예수님의 흔적으로 만드는 믿음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우리의연약함을 보고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화를 기쁨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 예배를 위해) 13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모든 주일예배와 새벽예배와 목장예배를 통해 화를 잠재우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