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Be the Church 18 엡 6:21-24 그리스도인이 머문 자리
2022.07.08 07:16
예수인교회
Be the Church 18 엡 6:21-24 그리스도인이 머문 자리 찬412/ 통469 내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한국에서 공중 화장실 갔을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는 스티커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말을 되네일때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화장실을 사용한후 뒷마무리를 깨끗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했다면, 그리스도인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첫째 두기고를 남겨야 합니다. 21-22
바울은 편지를 쓸때마다 마지막에 누군가를 소개하거나 추천하곤 했는데 에베소서에서는 두기고를 소개합니다. 엡6:21 사랑하는 형제이며 주님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내가 지내는 형편과 내가 하고있는 일과 그밖에 모든것을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 이말을 정리해보면 “지금까지 말했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내드리는데 그가 두기고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3차전도 여행에서 만난 제자중 한명입니다.(행20:4) 우리가 알듯이 3차여행은 시작부터 마칠때까지 계획들이 계속 바뀌었고 박해와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실한 두기고를 만난것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도와 교회안에는 늘 위기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속에 항상 주님의 위로가 있다는걸 기억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두기고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먼저 “사랑하는 형제”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받은 사랑을 잘 나누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나누는것은 잘 못합니다. 왜냐면은 받은데로 주게 되는 “사랑의 특징” 때문입니다. 사랑은 많이 받으면 많이 주고 적게 받으면 적게 줍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받았으면 아름다운 사랑을 주고 아픈 사랑을 받았으면 그 상처로 아픈사랑을 줍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아름다운 사랑을 풍성하게 나눠주는 사람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기고가 그런 사랑에 매여 있었다는걸 말합니다.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주님의 풍성한 사랑에 매여 있었다는걸 말합니다. 오늘도 풍성한 사랑을 나눠주려면 그사람을 보지 말고 주님이 주신 사랑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사랑에 매여 있을때 비로소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나눠줄수있게 될것입니다. 또 한가지 두기고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의 의미를 풀어보면 식당에서 서빙하는 종 중에 그식당에 다시오게 만드는 친절하고 신실한 종을 뜻합니다. 간혹 신앙에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는 분들을 만날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사람은 어떤교회를 다닐까?”, “저사람은 어떤 목장일까?”, “저사람은 어떤 가정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그것이 두기고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사정을 알리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엡6:22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고 나는 그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한 권사님이 골프치는데 친구분들이 대부분 교회 권사들이었는데 각자 자기교회 험담을 4시간동안 앞다투며 이야기 했다는걸 들었습니다. 참안타까웠습니다. 두기고는 그런 속사정을 이야기한게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전달하며 상대가 오해를 가질만한 내용들에 대해 속사정을 대변하여 속시원하게 풀어주고,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위로자란 “파라클레토스”로 “옆에 있는 위로자”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는 “보혜사 성령님”과 같은 말입니다. 오늘도 내가 머문자리에 두기고의 향기가 남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남고 다시 주님을 생각하게 만들며, 교회와 신앙과 지체들을 위로해주는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남는 하루가 되시길 축언드립니다.
두번째 “평안와 은혜를 남겨야 합니다. 23-24
23절부터 24절을 보면 바울의 끝인사로 마치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늘 마칠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축복하며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서신서에 들어가는 끝인사를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인사로 변형해서 만든 바울만의 끝인사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삼위일체의 은혜와 평강을 강조하며 마칩니다. 이것은 이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마침에는 항상 삼위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야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예배가 마쳐지고 세상을 향해 나갈때 삼위하나님의 축복기도로 마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가정모임, 친교모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만남과 모임이 마칠때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평화란 단순히 가정에 싸움이 그친것, 경제가 안정된것, 문제가 해결된것등의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말합니다. 저는 목장모임을 할때마다 이런 평안을 경험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장을 참여하기 전에는 부담도 되고, 시간도 분주한데 이상하게 찬송하며 주일에 나눈 말씀을 다시한번 나누기만 해도 마음에 평안이 오고 지체들의 나눔을 들으며 주님이 임재를 느낄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갈때는 저마다 “오길 잘했어”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사람이 좋은 성품이나 나눔으로 만들어내는게 아닙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며, 모든것을 감사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평안입니다.(엡5:19-20) 그리스도인의 만남과 모임에는 세상이 그어떤 질병과 두려움과 문제들로 빼앗을수없는 주님의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세상속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합니다. 또한가지 바울은 24절에 교회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는 교회가 되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갚을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린 모두 그토록 은혜 받길 원하면서 은혜를 주는것에는 인색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인식속에 Give and take의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혼나야 하고, 받은 만큼만 줘야 하고, 상처준사람에게 상처줘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은혜란 보상심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받은게 없어도 나눠줄수있는게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마18장에서 일만달란트의 빛을진 종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빛을 모두 탕감해준 임금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나지 않습니다. 일만달란트의 빛을 탕감받은 종이 밖에 나가자 마자 자신의 백데나리온의 빛을 진 동료의 멱살을 잡는 모습으로 끝마칩니다. 갚을수없는 은혜를 받았는데 은혜에 인색한 종의 비참한 모습으로 마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민생활 하다보면 날마다 우리 앞에 엎드러지는 백데나리온의 문제가 참많은 걸 보게 됩니다. 그것만 보면 참 힘든생활인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때마다 일만달란트의 은혜를 바라보며 백데나리온의 문제를 놓는 것이 이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마치며 이땅의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하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 모임과 교회가 되어지길 간절히 기도드립시다.
기도제목: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처럼 성도와 그리스도인들의 남은자리가 늘 주님의 향기로 채워지게 하시고 오늘도 세상속에 두기고 같은교회로 서게 하소서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화를 나누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 예배) 모든 선교지들마다 두기고 같은 선교사님들이 되도록 가정과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주시고 모든 예배마다 성삼위 일체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