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Be the Church 14 엡6:14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흉배
2022.07.06 07:25
예수인교회
Be the Church 14 엡6:14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흉배 찬348장 마귀들과 싸울찌라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시대 교회가 알아야 할 영적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귀의 궤계를 이기기위해 당시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로마군병의 갑옷을 비유로 성도와 교회에 필요한 영적 준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로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흉배가 지니고 있는 영적 의미를 알아봅시다.
첫째 진리의 허리띠 입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라고 말합니다. 갑옷을 입기 전에 먼저 허리띠가 나오는데 그이유는 당시 중동지역의 옷은 큰 천을 두른것처럼 치렁치렁 거리기에 허리띠로 잡아주지 않으면 갑옷을 입기도 힘들고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허리띠로 잡아주게 되는데 이때 너무 위로가도 갑갑하고 너무 내려가도 걸리적거리기에 정확한 허리춤 중심에 단단히 매야햇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 기준을 너무 높게 잡으면 신앙생활이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낮추게 되면 게을러집니다. 그래서 딱 중심의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바울은 이것을 “진리의 허리띠”라고 표현했습니다. 진리란 늘 변함없는 것을 진리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런것이 세상에 있을까요? 왜냐면 그동안 절대불변이라고 생각했던것들이 몇년만 흘러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수천년동안 지속되던 남성과 여성의 성이 불과 10년만에 무려 100가지의 성으로 늘어났습니다. 어제는 낙태를 하면 범법자였지만 오늘은 낙태가 법으로 보장되는 시대입니다. 과학의 여러 법칙들도 다양하게 바뀌고 있으며 사람들의 문화와 트랜드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시대에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오직 예수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이제곧 오실 분이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절대기준을 갖고 계신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진리이고 그분으로 허리중심을 제대로 잡을 때 우린 마귀와의 싸움을 자유롭게 할수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허리띠를 맬수있을까요? 예를 들어보면 삶의 모든것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감당못할사람을 만났는데, 나로서는 품어지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아니라 예수를 대입합니다. 가계에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방법이 모호합니다. 예수를 대입합니다. 예수라면 어떤걸 선택할지. 하나에서 열까지 예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나가는 걸 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대답은 클리어해집니다. 성경은 세상의 변하는 기준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고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합니다. 예수의 생각으로 클리어해지는 인생을 자유해졋다고 표현합니다(요8:31). 오늘도 기도할때 예수의 허리띠를 매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의 선택과 세상의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의 말씀의 기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살아가며 마무리하는 하루가 되도록, 그래서 우리의 가정과 학업과 일터에 주님의 기준이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둘째 의의 흉배 입니다.
다시한번 14절 후반을 보면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로마군인의 흉배는 목아래에서 부터 아랫배까지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무기입니다. 어떤것으로 찔러도 뚫리지 않는 심장과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무기입니다. 사탄의 궤계는 우리를 끊임없는 참소와 조롱과 비판과 오해로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 믿음에서 쓰러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의의 흉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의를 자신의 의로 착각하고 착한행실과 좋은 성품, 보이지 않는 섬김, 수많은 훈련과 열심으로 나의 의로움으로 방어하지만 그럴수록 무너집니다. 사탄은 “너 그렇게 주일예배 잘나오고 훈련잘받고 신앙좋지 근데 너의 말투가 왜그래?”, “너의 음란함은 어쩔껀데”, “너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뭐냐?” “네 자녀들의 신앙은 왜그런데?”, 이런 말을 감당할 수 있는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여러분, 마귀의 참소로 부터 자유로울수있는 사람은 인류에 없습니다.(롬3:26) 이런 마귀의 참소를 가장 많이 받은 사도가 바울이었습니다. 왜나면 바울은 믿는자들을 핍박하고 사형시키는 앞잡이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때 믿는자든 믿지 않는 자든 안밖으로 그는 수많은 참소와 비판과 조롱과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십시요 만약 목회자가 성범죄자의 전력을 갖고 있다면 여성들이 상담할수있을까요? 만약 목회자가 도둑질한 전과자라면 여러분 지갑을 교회에 가져올까요? 뭐 없어지면 목회자를 어떻게 볼까요? 여러분 바울은 예수믿는 자들을 피도눈물도 없이 쳐죽이는 살인자였습니다. 그앞에 성도들은 도저히 설수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증거 저런 증거를 대며 변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5:9-10 나는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무슨말입니까?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저의 모습은 제가 맞습니다. 나는 사도로 칭함받을수없는 괴수중의 괴수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내세울수 있는 의는 죄인이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를 세워주신 것은 예수의 피묻은 의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의 의입니다. 이 의가 헛되지 않게 오늘도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더많이 피흘리며 그 공로를 갚기위해 노력할뿐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십자가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의 의의 흉배로 무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앞에 우리의 의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전가하고 그분의 보혈의 능력을 덧입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를 참소하고 무너뜨리는 마귀의 궤계는 우리의 경험, 지식, 소산 윤리적 태도 그 어떤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피묻은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기도하며 그것을 덧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언합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속에서 거짓된 진리앞에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띠를 띠로 의의 흉배로 무장하여 마귀의 궤계와 참소를 담대하게 이겨나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수:선교지/모든 예배) 9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보호하시고 전신갑주로 강건하게 세워주소서, 이번주일예배와 목장예배와 새벽예배들에 기름부음과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는 예배시간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