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Be the Church 6 엡 4:1-16 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는가?

2022.06.15 08:3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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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the Church 6 엡 4:1-16 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는가?  찬210 시온성과 같은 교회

우리가 누군가를 부를때 이유없이 부르지 않는것처럼 항상 부름에는 그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4장으로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부름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1절) 이것이 교회(에클레시아)입니다. 중요한 점은 왜부르셨는가 입니다. 우리를 이땅의 교회로 부른 목적이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가 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1-6

   3절에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이말씀은 중요한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하나가 아니었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스페인어 “디아블로”란 험담하는자, 참소자란 의미로 이간질 하여 나누는 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사랑속에 교제하며 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선악과로 이간질하여 하나님과 인간을 나누었고 인간과 인간사이를 나누어 한몸이었던 우리를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외롭고 고립된 사망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사53:6) 이것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다시 하나되게 만든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고립되어 죽을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되고 사람과 하나됨을 회복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4-6절까지 반복적으로 부르신 목적이 하나였다는것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이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힘써지키다는 원어 의미는 로마 검투사들이 싸움에 나가기전에 서로에게 “살기위해 목숨걸고 싸워”라고 말하던 말입니다. 즉 하나됨이란 목숨을 걸어야 할정도로 어렵다는 걸 말합니다. 실제로 당시 신약교회안에 가장 큰 문제중 하나가 분쟁과 다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고 나누어 질까요? 성격차이, 문화차이, 언어차이, 인종차이, 등등 이런것 때문일까요? 그렇게 볼수도 있지만 영적으로는 “평화의 띠”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3절에 성령이 우리를 하나되게 한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평화의 띠”였습니다. 여기서 평화의 띠란 2절에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랍니다. 여기서 겸손이란 사람앞에 낮아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겸손하게 낮아지는 걸 말한다고 했죠. 배우자와 다툴때 그사람만 보면 화가 납니다. 그러나 그사람을 불러주신 주님을 바라볼때 겸손해집니다. 온유란 부드럽고 약한사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반대입니다. 강한사람이 그힘을 양같이 순하게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이온유는 예수님께 배우라고 말합니다.(마11:29) 예수님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있으면서도 십자가에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모세를 온유의 대표적인 인물로 삼습니다. 그는 고라자손이 들고 일어날때도 가족들이 반기를 들었을때도 자신의 힘으로 제압할수있었음에도 조용히 주님께 나가 눈물로 간구합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오래참음이란 용서와 연결되는 사랑의 절정입니다. 고전13장에 사랑은 오래참음으로 시작하여 오래참음으로 마침을 말합니다. 오래참음의 다른말은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출산할때까지의 기다림, 조개가 모래를 진주로 만들때까지의 기다림, 기다리던 사람을 만날때까지의 기다림, 사랑은 기다림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와 같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용서로 그리스도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됨을 지켜나갈수있는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되지 않고 목장이 하나되지 않고 일터나 교회가 하나되지 않는 이유속에 자세히 보면 다른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의 띠가 없기 때문일수있습니다. 오늘도 이 평화의 띠로 하나됨을 힘써 지켜나가는 이땅의 거룩한 주님의 교회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성장시키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7-16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목사님 몸이 자라고 나이가 들고 배움의 수준이 달라지는데 성장하지 못한다니요? 질문할수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육적 몸은 자라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자라지 못하는 존재가 된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인격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불순종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상담학에서는 어른아이란 말이 있습니다. 몸은 커지지만 속은 어린아이같이 좁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영적 성장이 멈춘 우리를 하나님이 성장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불러주셨다는 말을 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장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할까요? 첫째가 각자의 역활을 이해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우리 각사람에게 주신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즉 서로의 은사가 다르고 부르심이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부부가 다투는 것은 나와 다르다는것을 나와 틀리다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잘이해해야 합니다. 은사를 절대로 똑같이 주지 않습니다. 그이유는 서로 상호보완하기 위함입니다. 나에게 없는것을 상대에게 주신것입니다. 이걸 이해할때 틀린 만남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성장하는 만남이 되는것입니다. 두번째는 믿는일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주님을 믿는일과 아는일에 하나가 될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할때 머리로는 안다고 말하지만 몸이 안따라준다는 말을 흔히합니다. 말씀보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는거 다압니다. 근데 안되요, 사랑하고 용서 하는거 다압니다. 근데 안되요. 이 안되는 간격을 메꾸기 위해 자신을 깍으며 순종하면서 우리가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세번째는 우리가 어린아이인걸 깨달아야 합니다. 14절에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말합니다. 어떤학자가 교회안에는 오직 교육부만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고등부도 없고 청년, 장년부도 없고 오직 교육부 애들만 있답니다. 아이장로, 아이권사, 아이 목사, 그러니까 맨날 싸운다는 것입니다. 저희집에 애들이 다섯이나 있다보니 자주 다툼이 있습니다. 재미있는것은 정말 사소한걸로 싸웁니다. 빵을 먹으면서 크림을 한술더 발랐느냐 안발랐느냐? 고기를 한점더 가져갔냐 안가져갔냐? 나는 이불개는데, 너는 왜 안개냐? 근데 바울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14절에 인간의 속임, 간교한 술수, 온갖교훈의 풍조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라는겁니다. 무슨말이냐면 우리가 말한마디에 흔들리고 걱정하고 화내고 염려하는 속좁은 어린아이같다는 말을 하는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어린아이인걸 언제 알수있는가?, 교회공동체 안에 있을때 알수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속좁고 고집스럽고 아이같은지… 이걸 깨닫고 주님안에서 세워질때 우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온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잇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지체가 그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있을때 우린 성장합니다. 이것이 교회로 부르신 놀라운 축복의 섭리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과 목장과 여러 만남속에 예수의 성장이 있는 하루되도록 기도합시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가정과 목장과 사역에 하나됨을 위해 힘써 평화의 띠로 지키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우리 부부관계속에, 자녀들이, 목장식구들이 우리 교회가, 영적 성장을 위해 서로다름을 인정하고 아는일과 믿는일에 하나되는 놀라운 축복의 공동체로 서게 하소서

중보제목: (수:다음세대/자녀들) 교육부/유스/청년부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성령받게 하시고 잘 양육받게 하소서, 교역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충성된 아이들을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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