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26 요13:21-30 예수를 팔아넘길 자 

2022.05.27 07:53

예수인교회

조회 수493

The Cross 26 요13:21-30 예수를 팔아넘길 자  찬 455/507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자

  고전에 13장이 사랑장이듯 요한복음의 사랑장도 13장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만찬후에 자신을 팔아넘길 자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며, “누가 예수를 팔아 넘길 자”일지 맞춰 봅시다.

첫째 예수를 판자는 “주님의 마음을 저버린 자”입니다. 21-25

  21절에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합니다. “너희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 제자들은 깜짝놀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것은 이 말을 하는 예수님의 표정입니다. 성경을 보면 매우 괴로웠다고 기록합니다. 왜그랬을까요? 그하나는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팅이나 모임에 참석할때 누군가 나몰래 싫어하고 험담하면 마음이 힘들어지듯 예수님도 가롯유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것이 힘들었던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가롯유다는 돈궤를 맡았던 사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정은 아무나 맡지 못합니다. 가장 유능하고 충성된 사람이 맡게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믿었던만큼 배신감도 큰법입니다. 또 하나는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알고 그가 돌이킬수있도록 10절에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것은 아니다.” 그리고 18절에 “내빵을 먹는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그리고 21절에 너희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 말씀하신것입니다. 계속 돌려서 유다의 마음을 찔리게 하여 스스로 돌이키게 하려했던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들어온 마귀의 생각을 유다가 붙잡고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괴로웠던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것은 우리가 잘못된 마음을 먹을때 주님의 사랑이 더욱 강하게 좁혀들어온다는 점입니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에서 패배했을때 아간을 찿아가는 방식이 지파에서 가문으로, 가문에서 가족으로 좁혀왔듯이 주님은 가롯유다의 마음에 더 강한 사랑으로 다루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아이 떡 하나 더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을 잘못사용할때가 많은데 진짜의미는 “사랑으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배신하고 실수하고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사역과 사람을 맡겨주시는것은 우리가 잘났거나 유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겸손하게 맡겨진 가정과 영혼과 사역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그리고 감당못할 영혼을 만날때에도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떡”을 하나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둘째 예수를 판자는 “잘못된 선택을 한 자”입니다.  26-30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일어날까 말까?”부터 “지금할까 나중에 할까?” 짬뽕먹을까? 짜장먹을까? 오늘 가롯유다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26절에 예수님의 마지막 기회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내가 이 빵 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하는데 당시 유대의 식사문화는 특별한 우정을 가진자에게 음식을 찍어 건네주는것이 문화였습니다. 그랬기에 가롯유다가 빵을 받았다는것은 네가 나를 배신하려 하지만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우정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니까 빵조각을 받자, “사탄도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표현합니다. 즉 주님의 사랑이 강하게 표현될때, 마귀의 역사도 강하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우린 이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늘 영적 축복이 있을때, 영적 싸움이 존재합니다. 부흥할때, 곤두박질 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는 안타깝게도 마귀의 생각을 선택합니다. 왜그랬을까요? 3가지 정도 추측해 볼수있습니다. 하나는 “평상시 습관”입니다. 시1편에 보면 복있는 자와 악인을 구분지을때 그가 걷는 “길”로 설명합니다. 길은 한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걸을때 “길”이 생깁니다. 가롯유다가 중요한 자리에서 쉽게 마귀의 생각을 선택한 것은 그의 평상시 습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내가 선택하는게 아니라 본능이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예를들면 새벽에 일어났을때 “예배를 참석해야지”가 아니라 습관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미워할때도 어떤 상황이나 말을 들을때 습관적으로 화내거나 미워하게 된는것입니다. 그림에서도 유다의 손에는 돈자루가 쥐어져 있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는걸 말합니다. 그래서 우린 평상시 말씀을 따라 행하는 습관을 만드는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이중 신앙”입니다. 28-29절을 보면 제자중 누구도 가롯유다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말은 그가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다는걸 말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있을때는 예수님을 위하는 척, 가난한자들을 도와주는 척, 물질을 아끼는 척 했습니다(요12:5-6)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인터넷 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썬데이 크리스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주일에는 교회의 여러모임에 참여하지만 평상시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롯유다의 얼굴을 그 그림을 부탁했던 신부의 얼굴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부탁할때는 천사의 얼굴을 했지만 그 그림을 재촉할때는 악마의 얼굴을 했다는것입니다. 우린 의인과 죄인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꾸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또 하나는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30절에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밤에 나갑니다. 이것은 그가 어둠을 선택하여 떠난걸 말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가롯유다와 베드로를 비교합니다. 똑같이 실수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어둠으로 나갔고 베드로는 회개를 통해 빛으로 나왔다는 점입니다. 제자란 실수하지 않고 완벽한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라 실수하고 배반하지만 회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천국은 의인이 가는곳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죄인을 불러주신 은혜위에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제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늘 부족하고 믿음없는 죄인에게 은혜주셔서 영혼과 사명을 맡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의 구원을 이뤄가게 하소서 넘어져도 쓰러져도 성령을 의지하여 다시 돌이켜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예배) 12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우크라이나) 주일/새벽/목장의 모든 예배가 주님의 만찬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교회의 이전과정을 순적히 인도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