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24 요 12:1-11 주님을 위한 일 

2022.05.27 07:4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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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24 요 12:1-11 주님을 위한 일  찬 96/ 통94 예수님은 누구신가

가끔 집에서 목장을 할때 모든 아이들에게 집청소를 분배하여 맡깁니다. 그럼 열심히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핑계를 대거나 자기일을 만들어 함께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일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주님을 위한 일은 “섬김입니다.” 1-2

  1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사로의 사건이후 죽이려 하자 잠시 베나니를 떠났다가 다시 왔습니다. 이때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이잔치는 주님께 감사로 드린 잔치지만, 결국 이잔치는 주님의 장례를 기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때 2절 말씀에 마르다는 여기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쓰인 원어는 “섬기다, 수종들다”“디아코네오”로 쓰였습니다. 즉 그녀는 단순한 잔치일을 한게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수종든것입니다. 여기서 일의 첫번째 의미가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은 “일”이 아니라 “섬김”이 되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지치거나 낙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때문입니다. 배우자를 대하거나 집안일을 할때도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다면 달라질것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할때도 이것을 통해 주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일의 자세가 달라질것입니다. 교회일을 볼때도 예배당안에서 주목받는 일도 있지만 주목받지 않는 식당일이나 주차창 또는 안보이는 중보기도의 자리에 있다보면 알아주기는 커녕 무시받는 말을 들을때 낙심하거나 시험에 들게 됩니다. 이때 기억할것은 우리가 하는일은 달라도 모든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때 그일은 해처럼 빛나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해도 주님을 위한 일로 만드는 놀라운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우린 오늘도 많은 일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일들이 주님오심을 예비하는 복된 섬김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주님을 위한 일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3

   중요한 요소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일할때 각자의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 그한계는 바로 “희생의 시점”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거나 피해를 입게 될때 더 이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 드리는 드림이 바로 “주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됩니다. 3절을 보면 이때 “막내 마리아는 나드향유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덕분에 그 향기가 온집안에 가득찼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나드향유는 300데니리온으로 노동자의 1년치 품삯이었습니다. 1년동안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모은 돈이었습니다. 거기다 결혼전에 신부가 신랑을 맞기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오랫동안 준비한 정성과 섬김이 들어있는 가장 가치있는 예물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발에 붓는다는것은 말이 안되는 섬김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발은 양말이나 신발이 없었기에 가장 더럽고 불결한 부위로 유대인들은 절대 손도 대지 않고 이방인 종들이 닦아주던 부위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치있는걸로 가장 가치없는걸 위해 드렸습니다. 이것이 “희생”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고귀하고 영광스러우며 가장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낮고 천하며 죄인중의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희생입니다. 그 희생의 십자가가 우리를 살렸고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할때 그것이 주님을 위한 희생의 시점까지 나갈수있길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에 그 향기가 온집에 가득찼다고 말합니다. 그 희생은 가정과 일터와 학교를 가득채우는 복된 희생이 될것입니다.

셋째 주님을 위한 일은 “낭비가 아닙니다.” 4-6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희생하다보면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4절을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중 가롯유다가 그랬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선”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보다 비싼 향유를 바라본것입니다. 사람은 보는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할때 그 일의 가치보다 먼저 시간당 페이나 효율을 볼때가 많습니다. 그때 낭비란 생각이 듭니다. 또하나는 “욕심”입니다. 6절을 보면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게 아니라 자신의 욕심때문에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일할때 이런저런 명분을 만들어 불평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형평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내안에 욕심이 작용할때가 많습니다. 이때 주님을 위한 일은 낭비가 됩니다. 저는 여기서 가롯유다가 주님의 제자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기쁨과 감사로 섬기며 힘에 지나도록 섬겼을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주님보다 효율과 시간을 따지고 주님보다 내마음에 드는 욕심과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들어온것입니다. 그랫더니 누구보다 주님을 위한 섬김과 희생을 해야할 사람이 그것을 낭비로 만드는 사람이 된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한 섬김과 희생이냐 아니면 무가치한 낭비냐 이것을 판가름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일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하며 이런 마음 싸움을 승리합시다.

넷째 주님을 위한 일은 “타이밍입니다.” 7-8

   7-8절을 봅시다. 이 타이밍을 가로막는것이 바로 비교입니다. 마르다와 나사로와 마리아의 역활이 틀립니다. 이것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으름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비유, 또하나는 게으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섬기지 못하는 것은 미루는 습관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 일은 타이밍입니다. 이번 행사에도 적절한 타이밍에 섬겨준 분들 덕분에 향기나는 섬김이 되었습니다. 지난 행복의 초대는 이런 섬김과 희생의 시간이었습니다. 한주간 여러상황때문에 어려운이들이 발생하고 빵꾸가 나거나 변경되는 일들에 행사를 은혜로 마칠수있게 해준것은 바로 순종의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내일처럼 섬기고 희생햇더니 아름다운 향기가 되엇습니다. 늘 저와 여러분의 아름다운 드림은 주님의 꿈을 이루는 섬김이 됩니다.

오늘도 세상의 일과 가정의 일과 학교의 일을 주님을 위한 일로 만들어버리는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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