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22 요10:22-42  우리가 예수를 부인하는 이유

2022.05.17 08:1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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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22 요10:22-42  우리가 예수를 부인하는 이유  찬 324/통360 예수 나를 오라하네

한 불신자가 힘든 이민생활속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는데, 하루는 마켓을 나오다가 전도지를 받고 매몰차게 버렸답니다. 우린 이처럼 날마다 주님의 임재를 구하지만 정작 내앞에 주님을 부인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첫째 “답정너 때문입니다.”  22-24

  답정너”란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는 신조어입니다. 답을 정해놓고 신앙생활할때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본문 22절에 성전봉헌절에 예수님이 성전을 다신것은 성전의 주인이 주님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은 24절에 “당신이 메시야라면 혼란스럽게 하지말고 분명하게 답해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답만 잘해주면 될것 같지만, 주님은 25절에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냐면 이들은 이미 마음속에 예수는 “거짓말장이” 또는 “미치광이”라는 답을 갖고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답정너”였습니다. 상대에게 의견을 물어보는것 같지만 실제론 원하는 답이 나올때까지 답답하게 합니다. 예를들어 이성교제에 대해 멘토링을 받으러 오는 청년들을 보면 대부분 답정너입니다. 이미 마음이 정해졌는데도 마치 물어보는것처럼 해서 헷갈리게 만듭니다. 안타까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답정너”의 자세로 기도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도응답에 대해 답을 정해놓고 주님께 묻습니다. 진로를 구할때도, 어려운 문제를 만날때도 언제쯤, 어떤식으로 풀리면 좋을지 이미 정해놨습니다. 그것대로 되지 않으면 주님이 안계시다고 투정부립니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될때도 있지만, 때론 고난과 고통일때도 있고, 받기 힘든 징계일때도 있고 심지어는 무응답일때도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행12장에 베드로가 옥에 갇혀 매를 맞았을때 성도들은 뜨겁게 중보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베드로가 풀려나오자 성도들은 뜻밖이란 표정으로 놀랍니다. 왜냐면 풀려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한게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때 필요한것은 답정너가 아니라 “주님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겠습니다.”입니다. 그럴때 기도의 응답이 어떻든지 우리의 믿음은 더욱 뜨거워질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음성이 안들리기 때문입니다.”  25-30

  가장 무서운 말씀입니다. 26절에 주님의 말씀이 아무리 전파되도 그것이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내양이 아닐수있다고 말합니다. 그 기준은 27절에 “내음성이 들리냐?, 들리지 않느냐?”입니다. 이것은 세가지로 생각해 볼수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말씀이 정말 안들리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예배를 드리는데 누구는 믿어지고 누구는 안믿어진다고 말합니다. 전도할때도 어떤분은 쉽게 인도받지만, 어떤분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못믿습니다. 이말은 정말 안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점은 반드시 그런것은 아닙니다. 간혹 말씀이 들리지 않다가 나중에 들리는 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중요한점은 우리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점입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관계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목자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목자가 양을 칠때가 있었는데 이때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못듣습니다. 왜냐면 관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관계란 한순간에 만들어진게 아니라 희노애락을 오랫동안 나눈 친밀감입니다. 친구를 사귈때도 좋을때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때도 함께한 친구가 오래가듯 주님과도 희노애락을 함께한 사람이 그 음성을 들을수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눅9:23에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화중에 자기 생각이나 목소리가 큰 사람은 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내생각과 목소리를 조금 낮춰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양이 되기 위해, 주님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됩시다.  

셋째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31-39

   예수님은 사람들이 돌로치려하자 34-39절까지 나를 못믿겠거든 내가 한 기적과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선지서들을 보면 메시야가 올때 눈먼자가 눈을뜨고, 억눌린자가 자유케된다고 했던 말씀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일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뜻과 일보다 자신의 뜻과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 15장에 탕자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나간 동생을 찿으러갈수있는 큰아들이 있었지만 그아들은 집안일만 열심히 돌봤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아버지의 뜻은 집나간동생을 데리러 가는것임에도 자기일에만 치중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가 그렇습니다. 많은 프로그램과 훈련과 예배를 드리지만 정작 누구도 주변의 영혼에 대해 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면 온통 자신의 가정, 일터 건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계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한쪽을 쳐다보면 다른 한쪽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일과 문제에만 초점이 맟줘져 있으면 주님의 전능하심과 그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엄마와 아빠가 되봐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듯이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가봐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인생에 여러가지 “십자가”를 주십니다. 왜냐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주님의 일에는 관심없는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람이라면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나를 부인해야 하는데 주님을 부인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의 뜻가운데 답을 정해놓지 않고 순종할수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중보제목: (화:목장/목자/VIP/야외예배) 11개의 목장을 위해. 야외예배를 위해, 목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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