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20 요9:35~41 인자를 믿느냐?
2022.05.12 14:04
예수인교회
The Cross 20 요9:35~41 인자를 믿느냐? 찬송:435
우리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당신은 이것을 할 수 있습니까?” 이는 그의 ‘능력’에 대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이것에 대하여 알고 계십니까?” 이는 그의 ‘지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이는 그의 ‘삶의 가치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는 우리는 적당히 답변할 수도 있고 물음을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 갈 수도 없고, 피해가서도 안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여기서 ‘인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자신’을 말씀하는 것으로 바로 이질문은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삶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그래서 과연 ‘믿는다는 것’, 또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은 나면서 소경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앞을 보게 되는 기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을 살펴보면 이 눈 먼 사람은 육신의 질병만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기적의 체험 후에 점진적으로 영적 눈도 뜨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보면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만난 뒤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이해합니다. 11절을 보면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소.”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마음씨 좋고 긍휼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그는 이번에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보게 됩니다. 17절 말씀에 “그들은 눈멀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을 보면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38절을 보면 그는 드디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주님을 더욱 담대히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도의 응답은 단순히 우리의 삶의 문제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욱더 주님을 우리의 삶에 고백하고,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어지는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 과연 축복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후부터, 오히려 그의 삶은 더욱 힘들게 되었고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바리새인들에게 붙잡혀가 협박을 당하고, 말을 듣지 않자, 그의 부모까지 불러와 협박을 당합니다. ‘예수가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유대교에서 출교를 시키겠다는 협박을 당합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 같은 바리새인들의 협박이 점점 강해질수록, 그 또한 더욱 담대히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유대의 최고 권력자들이었습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소경은 가장 연약한 약자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구걸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 28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협박에 소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였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28절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말하였다.” 이 말은 소경이 오히려 바리새인들의 협박을 조롱하는 말합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협박을 해도 나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인과 구걸하는 소경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어떤 상황에도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다면, 그 어떤 삶의 도전과 문제 앞에서도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예수를 끝까지 부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됩니다. 여기서 “쫓아냈다”는 뜻은 “밖으로 내던지다, 추방하다”라는 뜻으로 “그의 삶의 터전에서 그를 몰아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시는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삶의 터전을 빼앗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 위기의 순간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것입니다. 바로 위기의 순간, 고난의 순간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난 가운데 있던 그 소경을 찾아온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부터 38절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그에게 격려나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를 묻고 계십니다.
“힘들지”가 “인자를 믿느냐?”는 믿음에 대해 질문하십니다.
왜 일까요? 왜냐하면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붙들고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와 어려움이 닥치면, 물질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상황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믿음의 대담함이 있을 때, 우리는 상황과 환경을 뛰어 넘는 참된 평안과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0편 11절, 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할렐루야”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의 문제와 담대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그 믿음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소경을 만났을 때,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믿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준다’는 뜻을 보면, 이 단어는 “꽃밭에 골고루 물을 뿌리듯 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 뜻은 주님의 평안은 기쁠 때나 풍요로울 때만 주는 평안이 아니라, 슬플 때, 어려울 때, 심지어 고난 가운데서도 주어지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희노애락’의 모든 순간에 주시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을 바라보면 담대히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우리의 삶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께서 세상의 삶에 지쳐 있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담대히 선포하고, 또 그 선포대로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제목: 삶속에서 믿음을 선포하고 믿음대로 담대히 살아감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