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4  요 19:28-34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면

2022.04.15 18:20

예수인교회

조회 수511

고난주간 4  요 19:28-34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면   To come down from the cross

    고난주간을 통과하며 여러분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까?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면 십자가가 우리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펄전목사님은 십자가를 볼때 아무느낌이 없을때마다 더 많이 울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만큼 내 신앙이 굳어져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십자가에서 내려올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완전히 죽었을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완전한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통해 두가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법을 알려줍니다.   

첫째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면 “말씀에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You must obey the Word to the end.

   “순종”은 십자가의 절정이자 묘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이유에 대해 28절에성경의 말씀을 이루려고”, 그리고 30절에 “다 이루었다.” 로 표현한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졌다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을 자세히 보면 마치 말씀에 강박증을 가진것처럼 자신의 출생과 직업, 생활, 배신, 심지어는 죽음까지 모든것을 말씀대로 행하고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중요한 이유 입니다. 저는 어릴적 짜장면집 아들과 치킨집 아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아무때나 짜장면과 치킨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떨까요? 이땅에서 마음대로 행할수 있지 않았을까요? 근데 왜 말씀대로 순종했을까요? 그이유 중 하나가 “아담의 불순종”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아담의 불순종에서 시작됬습니다. 그래서 우리안에 권위에 불순종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불순종하고 자녀도 클수록 부모의 권위에 불순종하려는게 나타납니다. 직원도 지날수록 사장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를 가보십시오. 바람잘날 없습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담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회복한 십자가였습니다. 이것을 이룰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도 순종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옛날 책중에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처럼 할수있다”는 책이 있었습니다. 어떤 컴맹도 이책을 일주일만 하면 할수있다. 뭐 그런 말이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십자가에 순종한 것은 어떤 인간도 말씀을 알면 예수님처럼 순종할수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반신마비 됫을때 병간호하며 제일 힘들었던 것은 말을 안듣는것이었습니다. 뇌졸중을 질병이 아닙니다. 단지 몸이 마비 됬을 뿐입니다. 그래서 시키는데로만 움직이고 훈련하면 90%이상 몸이 회복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나는 움직이게 하려고 하고 엄마는 안하려고 하고, 그래서 하루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엄마처럼 반신마비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다시 움직일수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이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신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답답해서 인간도 말씀에 순종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린 이런말 자주합니다. “아유 인간인지라, 아유 어떻게 시키는대로 다 합니까?” 저도 이마음을 이해합니다. 왜냐면 제일많은 순종을 요구받는 사람이 담임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한걸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목회자는 늘 두세걸음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저도 이것이 정말 하기 싫을때가 많습니다. 새벽예배, 성경공부, 전도, 목양, 행정, 책임, 하나에서 열까지 하기 싫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담임목사를 해보시면 압니다. 아니, 목자 하나만 해봐도 금방알게 될것입니다. 교회에서 뭔가를 맡아서 해보면 내가 얼마나 불순종의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그럽니다. “교회는 순종을 배우는 곳”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기도, 말씀, 믿음등 모든 신앙의 활동은 사실 순종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순종을 훈련하는 툴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내려올수있는 유일한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순종하며 못을 뽑고 자기 맘대로 내려오던가, 아니면 “죽기까지 순종하여  예수님처럼 죽어서 내려오던가.입니다. 바라기는 십자가 앞에서 오늘 이것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둘째 십자가에 내려오려면 “창에 찔리고 다리가 꺽여야 합니다.”

   31절에 보니까 유대인들은 갑자기 내일이 안식일이기에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와 다른 죄수들의 다리를 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당시 십자가형은 피를 많이 쏟아서 죽는게 아니라 양쪽 팔이 십자가에 매달리면 어깨근육이 폐와 호흡을 막아서 숨을 못쉬어 죽게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계속해서 다리힘으로 몸을 끌어올리면서 끝까지 살아남는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니까 먼저 좌우편 강도의 다리를 꺽어서 죽이고 예수님의 다리도 꺽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이미 숨졌기에 다리를 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리힘을 사용하지 않고 죽으신것입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억울하고 손해를 보거나, 내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리힘을 써서 자꾸 살아나려고 합니다. “나 안죽었어 나 이런사람이야, 하며 욱하는거죠.” 그래서 주님은 우리인생에 다리를 꺽는 시간을 주곤 합니다. 야곱을 보세요. 속이는 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어떻게 거듭나죠? 환도뼈가 꺽이면서 변합니다. 환도뼈는 다리에 힘을 연결하는 뼈입니다. 밤새 기도로 씨름할때 그것이 꺽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의 힘을 꺽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떤분은 반대로 다리에 힘을달라고 기도하는분이 있습니다. 바른기도가 아닙니다. 신약시대 다리힘이 최고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가말리엘 학파에 로마시민권, 베냐민지파 근데 예수를 만난후 이모든걸 노페물로 버렸습니다. 거기에 아무리 힘줘봐야 선한게 나오지 않는다는걸 빨리 깨달은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다리힘에 선한것이 없다는 걸 빨리 알아야 십자가에서 빨리 내려 올 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의 다리가 꺽이는 것이 은혜입니다.

   또 하나 십자가에서 빨리 내려오려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것입니다.” 그래야 물과 피를 쏟고 빨리 죽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이미 39대의 채찍을 맞아 온몸이 갈갈이 찢겨진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고 약 1.5km를 걸어온 상태였습니다. 이미 피를 많이 쏟았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십자가는 더 무겁고 갈수록 나아지는게 아니라 갈수록 죽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약 1kg 피를 흘리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약 1.5kg 쏟으면 죽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거의 혼수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달리면 길게는 일주일정도 버티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단 6시간만에 숨졌습니다. 그만큼 피를 많이 쏟은 것입니다. 거기에 34절을 보니까 한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확인사살”인 것입니다.

   간혹 십자가에 달렸을때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두번죽이는 사람들입니다. 상처입었는데 또 상처주는 사람, 아닌척하며 비꼬는 말하는사람들, 험담하는 사람들, 참 밉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십자가형에서 창을 찌르는 것은 죽음을 도와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 형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어떤 죄인들은 일부러 미리 돈을 주고 병사들에게 찔러달라고 하는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달릴때 나의 마음을 찌르고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십시요. “십자가에 빨리 내려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장로님이 직장에서 도둑으로 오해받았을때 큰 낙담이 왔는데 그때 아내의 편지가 이 장로님을 일으켯습니다.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의심하기보다는, 차라리 의심받는 사람이 된 것이 감사해요. 당신의 억울함은 하나님이 벗겨 주실 것이고, 나는 당신이 당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 차라리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직장에서 당신이 빛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벧전2:21 의 말씀을 적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장로님이 이편지에 힘을 내서 그 오해를 견뎌냈고 결국 오해가 풀리고 그 직장에서 더 인정을 받게 되었답니다. 

요 20장에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후에 제자들을 찾아는데 이때 도마가 예수님의 창자국 못자국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은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부활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참혹했던 상처인 못자국과 창자국이 그대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아름다운 흔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근데 그 상처로 주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상처를 진주가 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람들은 상처를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상처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치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별처럼 빛나며 내려오게 될것입니다. 기도합시다.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