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1 요18:15-18 누구를 부인할 것인가? Who do I have to deny?
2022.04.12 09:16
예수인교회
고난주간 1 요18:15-18 누구를 부인할 것인가? Who do I have to deny? 찬324/통360 예수 나를 오라 하네, 고난주간 첫째날에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고난주간은 단순히 “아 주님의 십자가가 이렇게 고통스러웠겠구나 감동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저 십자가가 내가 져야할 십자가였구나 깨닫고 결단하는 한주입니다. 그래서 한주간 다양한 십자가가 깨달아지면서 무겁게 느껴질것입니다. 어떤분에게는 말씀이 무겁게, 어떤분에게는 새벽에 몸이 무겁게, 어떤분에게는 삶이 무겁게 느껴져서 참석이 힘들수도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이 고난주간이라는 십자가 만큼은 꼭 끝까지 지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꼭 물어보는게 있습니다. “엄마좋아? 아빠좋아?”. 대답도 거의 정해져있지만 괜히 알고 싶습니다. 이때 똑똑한 아이는 “둘다좋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신앙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신앙에는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에게 떨어진 질문이 그랬습니다. “예수의 제자냐? 세상의 제자냐?”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주님나라 갈때까지 이 질문을 강요받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베드로를 통해 첫째날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질문속에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He denied the Lord.
지금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후 가롯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병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에 끌려온 상황입니다. 이때 15절을 보면 제자들은 흩어졌고 베드로와 무명의 한 제자만 대제사장의 안뜰까지 쫓아왔습니다. 이때 갑자기 16절에 한여종의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도 예수의 제자요?” 사실 이것은 평상시 예수님이 잘나갈때는 베드로에게는 자랑같은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하죠, 내가 제자중에서도 수제자요!.” 자랑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번에 아니요!, 부인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교회에서야 자신의 직분을 자랑하지만 직장이나 가계 또는 학교에 가서는 007로 살아갑니다. 007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속이기 시작하면 계속끌려가게 됩니다. 뉴튼의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물체가 한번 밀리면 그것에 저항하는 힘이 없으면 계속 끌려간다는 원리입니다. 마귀의 죄의 유혹이 그렇습니다. 처음 한번 죄짓기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죄지으면 가속력이 붙어 나중엔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갔을때 007로 살았습니다. 왜냐면 과대표였는데 과에서 맨날 술먹고 나이트장이나 당구장등으로 학우들을 끌고 다니다 교회다니는걸 숨길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하루는 술자리에서 몇몇 학생이 술을 안먹길래 물어보니 교회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교회다녀, 근데 괜찮아”라고 설득하며 29명을 술먹게 만들었습니다. 한 교수님이 “야 너 대단하다” 칭찬했습니다 사실 이런 세상의 인정을 받기위해 직장과 일터에서도 007로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번 부인하면 계속 부인해야 합니다. 아니 가속력이 붙어서 더 심한것도 하게 됩니다. 죄는 작을때 잘 관리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죄에 넘어진게 아니라 작은 죄부터 무너졌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부담을 줍니다 예수의 제자라면 컨닝하면 안되지. 교통법규 안지키면 안되지, 세금안내면 안되지, 싸우면 안되지, 속이면 안되지, 미워하면 안되지, 거짓말 하면 안되지, 그런데 여기서 안짜만 빼고 싶어집니다. 컨닝해도 되지, 싸워도 되지, 미워해도 되지… 여러분은 어떤 신자입니까? 나를 부인해야 하는데 자꾸 주님을 부인하고 있진 않습니까? 바라기는 고난주간에 나를 부인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세상의 질문속에 “주님은 세상을 부인했습니다.” 19-24
다른 복음서는 베드로의 부인사건을 연이어 기록했는데, 요한만 첫번째 부인이후 중간에 대제사장 안나스가 예수를 심문하는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는 베드로와 흔들리지 않는 예수님을 비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20절을 보세요. 대제사장 안나스의 심문에 예수님은 “나는 드러내놓고 세상에 말하였소, 나는 언제나 모든유대사람이 모이는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것이 없소,” 베드로는 여종의 말에도 어둠속에 숨었지만 예수님은 아무것도 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강하게 변론한 두가지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에게 주는 메세지”입니다. 당시 불주변에 앉아있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거리는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정도의 거리로 매우 가까웠음을 알수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부인하는걸 예수님이 지켜보고 있었다는걸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니가 그렇지, 그럴줄 알았어 햇을까요?” 아닙니다. 그반대입니다. “베드로야 힘내라, 죄가 올때 이렇게 단호하게 이겨내야한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인생을 가르치듯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때 술사건이후에 마음에 회심하고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갔는데 노래방에서 최고선임병이 술먹다가 이등병인 제가 술을 마시지 않자 술병을 깨고 저를 위협했습니다. “이래도 안먹을래?”.다행히 다른사람들이 말려서 잘 마무리 됬지만 큰일이 날뻔했습니다. 그런데 몇일후에 그 선임병이 저에게 “나도 교회다닌다, 그런데 널보면서 나에게 화가나서 그랬다”는 겁니다.” 더 놀라운것은 그 선임병이 저처럼 마음에 회심을 하고 술을 끊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낼수있는 작은 빛을 낼때, 나만 아니라 가정이 변하고 주변이 변할 수 있음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가르쳐주고 있는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이 죄없음을 강조한것은 “십자가의 억울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없이 억울하게 진것입니다. 가끔 우리가 잘못해서 받는 징계나 어려움은 엄밀히 말하면 당연히 받는 것일수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것이 억울하게 지는 십자가일것입니다. “그거아닌데, 남이 나를 오해할때, 그게 제일 힘듭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우리삶에 세워질때 그자리에 주님의 빛이 날수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야 너를 부인하려면 억울한 일을 잘 감당해야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세상의 질문속에 베드로는 도망쳤습니다. 25-27
우리가 세상의 어려운 질문이 반복되면 가장 쉬운것이 그자리를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치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면 십자가가 보입니다. 25절에 베드로가 어둠속에서 불을 쬘때에 그 중 한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또 묻습니다. “당신도 그제자지?” 작은 불빛이 베드로의 얼굴을 알아보게 한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속에 아주 작은 빛이라도 마음에 찔림을 경험합니다. 주일예배를 빠져보십시오.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거짓말을 해보십시오,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걸 꾹 참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26절에 대적을 제대로 만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날 베드로는 한 시종의 귀를 잘랐습니다. 하필 그사람의 친척이 그 불주변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묻는게 아니라 “야 내가 너 봤는데 어디서 오리발이야 호통을 치는겁니다.” 다른복음서를 보니 예수를 저주하고 욕하며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장면에서 주님의 은혜를 봅니다. 예수님이 그때 그 시종의 귀를 다시 붙여주지 않았다면 이 시종의 친척은 베드로의 목을 치려고 했을것입니다. 주님의 하신일에는 다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결국 그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칩니다. 우린 도망치는 베드로를 보며 두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누구라도 실수할수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에 엊그제 호언장담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됬다는것은 누구나 이럴수있다는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련의 반복이 아니라 돌이키기 위함”이란 점입니다. 거듭 반복된 세상의 시험과 질문은 베드로를 궁지에 몰리게 했지만 사실 스스로를 돌이키게 해주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시험이 반복되고 연약함이 자꾸 드러날때 그것을 숨기고 싶고 도망치고 싶어질때 그것이 돌이킬수있는 기회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27절에 보니까 마지막 부인과 함께 닭이 울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전 3번 부인한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오마쥬”라고 하죠 닭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소리가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고 베드로는 주를 부인하는 사람에서 주를 붙드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붙드는 사람들이 되기를 결단하는 고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 발견한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끝까지 지고 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목자/VIP) 모든 목장마다 십자가를 지는 한주가 되게 하소서. 영혼구원하는목장이 되게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