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12 요6:16-21 내가 왕되려고 할때
2022.04.08 07:46
예수인교회
The Cross 12 요6:16-21 내가 왕되려고 할때 찬302 / 408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어머니가 중풍일때 지하철을 타고 약 세시간 걸려 치유집회를 참석했지만 치유되지 않았을때 시험에 든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병이어 기적만 쫓던 사람들과 비슷햇던것 같습니다. 이 마음안에는 교묘히 “내 욕구가 왕이 되어 신앙을 끌고가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기기 위해 3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내가 왕되려고 할때 “떠나보내야 합니다.” 15
15절에서 오병이어 기적 이후 사람들은 예수를 “왕”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님은 갑자기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왕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구를 왕삼아 주님을 램프의 요정 “지니”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 가장 큰 기준은 내가 원하는 공약입니다. 그걸 들어주면 훌륭한 대통령이고, 그것이 안들어지면 감옥에 보내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흩었습니다. 죄의 본성은 사람들앞에 혼자일때는 겸손하다가 뭉치면 강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말 잘듣다가도 엄마가 오면 괜히 어리광에 말을 안듣습니다. 자기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죄가 강해질때 바벨탑을 흩으셨고, 사도행전에 예루살렘교회가 선교를 나가지 않자 흩으셨습니다. 이민교회가 가끔 분쟁이 생기면 흩어지는것도 그 원리로 볼수있습니다. 악한 본성이 강해지는걸 흩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왕되려는 마음이 올라올때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때 또하나 주목할것은 예수님도 흩어져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점입니다. 육체를 입고 있던 자신도 “높아지려는 마음”을 느낀 것입니다. 일이 잘되고, 돈이 많아지고, 높아질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이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앞에 손들고 항복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가망없는 죄인됨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보다 높아지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내가 왕되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떻게 알수있을까요? 내 목소리가 커지고, 사람을 모으려 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입고, 내생각대로 하고 싶어집니다. 이 마음들을 조심해야합니다. 이것을 떠나보내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오늘도 내속의 왕 됨을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둘째 내가 왕되려고 할때 “위기가 찿아옵니다.” 16-18
예수님은 제자들도 흩어버리기 위해 먼저 가버나움으로 배를 태워 보냅니다.(16-17절) 그런데 약 5-6 km정도 갔을때 갑자기 큰 바람과 풍랑이 일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말씀대로 갔지만 위기가 올수있다”는 점입니다. 간혹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시작한일이나 만남이 어렵게 될수있습니다. 이때 기억할것은 주님의 계획이 있다는 점입니다. 막 6장 후반에 주님이 산에서 이광경을 지켜보다가 위기의 절정에서 주님이 물위를 걸어서 도우러 오십니다. 즉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실수와 실패마저도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낙심하면 안됩니다. 또 하나는 “어둡고 조급할때 예수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7절에 요한은 예수님 없이 출발한점을 지적합니다. 일이 어려워지고 조급해지면 나도모르게 내힘으로 결정하려고 할때가 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이었습니다. 그는 무늬만 하나님을 섬기고 실제 중심은 자신이 왕이었습니다. 언제 나타났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날은 어두워지고 사무엘은 오지 않았을때 번제를 자기 마음대로 드렸습니다. 번제란 하나님앞에 충성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자기 편리대로 한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망령되다”고 표현했습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앞에 있는 사람을 무시할때 쓰는 표현입니다. 하루는 식사중에 아이들이 큰소리를 내며 싸운적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모두 똑같이 혼을 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앞에서 싸움을 한것은 부모가 마치 그자리에 없는 것처럼 무시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을 험담하거나 싸운다는 것은 내앞에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다윗은 정반대였습니다. 아주 작은것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삼하5장) 가끔 아이들이 중요한 결정앞에 아빠에게 물어보는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아이들이 답정녀, 답정남으로 자기가 원하는걸 갖고 나옵니다. 그러나 물어본다는것 자체가 부모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 마음까지 아십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내가 왕되려고 할때 “주님이 오십니다.” 19-21
막 6:48절을 보면 그들의 힘이 한계에 다다르고 더이상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걸 보시고 주님이 바다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19절) 당시 라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흰옷을 입은 물체가 물위로 온다는것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런 장면입니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듯 그들은 두려움속에서 당연히 귀신이라고 생각했을것입니다.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때 말씀이 선포됩습니다. “나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I am, Don’t be Afraid. 여기서 I am이란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킬때 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위기때마다 주님의 이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이것이 인생의 두려움을 이기는 원리입니다. 아이가 4살때 손인형 놀이를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호랑이 손인형을 갖고 놀리려고 침대밑에 숨어서 손인형만 보이게 하고 “어흥” 하면서 놀렸는데 이녀석이 무서워하지 않고 자꾸 웃는겁니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호랑이를 안보고 저를 쳐다보며 웃으면서 “아빠잖아” 하는거에요. “아빠다!” 우리가 어떤 환란속에서도 아버지가 거기 함께 계시는걸 알면 안무섭습니다. 저는 약 6년전 심장의 협심증 판정을 받고 세상이 무너지는줄 알았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찿아왔습니다. 그때 한 교회에 들어가 기도했는데 울고 있는 저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다” 내가 너랑 함께 하고 있다. 그 한마디에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주님이 함께 한다면 내 가정도, 인생도, 다 책임져 줄수있을꺼야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21절에 그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예수를 배안으로 모셔들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 주님의 임재를 회복하자 어느새 힘하나 안들고 목적지까지 와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풍랑을 만나고 계십니까? 거기에는 주님의 계획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한계점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것입니다. 그때 “나다” 라는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가정과 일터의 선장으로 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내 욕구가 내경험이 내지식이 왕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나를 인도해주세요. 주님을 이용하려는 나의 마음, 내욕망을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의 마음이 끌어가도록 인도해주세요.
중보제목: (금:선교지/ 종려주일/고난주간/부활절예배를 위해) 12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깊이 체험하게 하소서, 부활절 예배를 통해 온교회가 부활과 영광을 경험케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