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10 요5:19-29 예수님의 자기소개
2022.04.05 07:28
예수인교회
The Cross 10 요5:19-29 예수님의 자기소개 찬370장/455 주안에 있는 나에게
자기 PR시대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중에도 자신을 잘 표현하여 코미디언이 영웅이 되었습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자기 PR을 계속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19-23
19절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아버지가 하는 일은 나도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당시 한 가문의 직업을 아버지에서 아들이 전수받아서 대대로 물려주는걸 비유하며 표현했습니다. 이같은 자기PR을 하신 가장 큰 이유는 23절에 “하나님을 공경하듯 아들 예수를 공경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순종 했지만 인간 예수에 대해서는 반박하거나 심지어는 조롱과 범법자로 여겼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이라면 듣지만 사람의 소리로 들을때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풀러신학교에서 박사 공부할때 캠퍼스 공원에 앉아서 사색하고 있었는데 옆 벤치에 허름한 옷의 노숙자로 보이는 백발 노인이 보였습니다. 학교에 이런분이 들어와도 되나? 생각했는데 수업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까 벤치에서 본 노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교신학의 거장 아서글라서 교수님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 공원에서 볼때는 한없이 불쌍해 보였는데 강단위에서 그의 말은 “법”처럼 들렸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이단자, 젊은 랍비, 자기들을 반역하는 청년으로 보니까 그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리 들릴수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은 아들과 싸우다가 “엄마 교회다니면서 그런 말을 써도 되?” 그말을 들으니까 화가나서 아들을 더 혼냈답니다. 그런데 그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다가 기도중에 회개가 나오더랍니다. 아들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서 마지막시대에 지극히 작은자를 통해 우리에게 찿아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주변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는 우리를 살리는 분이다. 24-27
예수님은 두번째로 우리를 살리는 분으로 소개하는데 그 방법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5: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에는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작동되려면 “듣는자” 와 “믿는자”가 되야 한다고 말합니다. 원어를 보면 귀로 듣는게 아니라 행하는걸 말합니다. 예를들어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말을 들어야 해” 할때 귀로 듣는게 아니라 말대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주님의 말씀은 살리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배우자에게 먼저 사과를 했답니다. 그러자 배우자도 마음이 풀어졌지만 먼저 자기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이후 웬만한것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했는데 삶이 점점 변하더랍니다. “말씀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수류탄은 산을 울릴정도의 폭발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핀을 뽑지 않으면 작은 돌멩이일 뿐입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 짐만될 뿐입니다.
또 하나 “믿는자”란 표현은 “의지한다”는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처음가는곳에 친구가 “나만 믿고 따라와”할때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끌려가듯 주님의 말씀이 이끄는데로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른것에 이끌려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물질에 이끌리거나, 두려움 또는 분노에 이끌리거나 인정받음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의 공통점은 바닷물을 마시듯 갈증만 더 심해져서 결국 죽음으로 이끕니다. “리차드 훼슬러”가 쓴 “아침은 밝을것인가?”라는 책에 죄가 우리를 어떻게 끌어가는지 설명합니다. 어느냘 쟈니는 뒷마당에 할머니가 아끼는 오리를 새총으로 겨냥하다가 실수로 죽이게 됩니다. 두려워서 장작더미에 숨겼는데 누나 샐리가 그걸 보았습니다. 점심때 할머니가 누나 셀리에게 “그릇좀 함께 닦을까?” 물었더니 셀리는 “할머니 오늘은 쟈니가 한다고 하네요”.하며 쟈니의 귀에 속삭입니다. “오리.. 알지?” 쟈니는 아무말없이 접시를 닦았습니다. 잠시후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낚시를 가려고 하자 할머니는 샐리에게 “집안일을 도와줄래?” 그러자 샐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쟈니가 하고 싶다네요.” 그 이후로도 샐리는 쟈니를 부려먹었습니다. 견디다 못해서 쟈니는 할머니께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쟈니야 난 그일을 알고 있었단다 창문에서 봤거든, 괜찮단다 용서해줄께. 그리고 셀리의 말대로 하지 않아도 된단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가는 두려움과 분노와 미움의 말이 있다면, 그것에서 풀려나도록 생명과 용서와 사랑의 말이 있습니다. 어느말을 믿고 따라가겠습니까? 오늘도 나를 살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는 심판하는 분이다. 28- 30
28절에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심령이 죽은자도 주님의 음성에 반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마지막날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될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일에 결산하는 분, 심판하는 분인걸 알아야 합니다. 결산이란 행한 모든 일을 정확히 기록하여 따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행한 모든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싸움이 많은 교회에 카메라를 단후로 싸움과 거친 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든 말이 기록되고 모든 행동이 녹화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요? 바르고 정직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게 될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말씀을 강조하는걸까요?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리안에 죄성을 따라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심판하는 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바라보며 아무도 없을때 특히 그분을 바라보며 내안에 선한 양심이 살아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며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말씀을 듣기만 할게 아니라 행할수있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vip/목자) 11개의 목장모임을 위해, 목자들과 vip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영혼을 구원하는 목장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