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7  요 4:1-26  신앙의 스무고개 

2022.03.29 08:2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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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7  요 4:1-26  신앙의 스무고개    우물가의 여인처럼

스무고개란 20개의 질문을 예, 아니오로 대답하며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질문놀이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질문을 통해 그녀의 문제와 갈급함의 정답을 찿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같습니다.

첫째 그녀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 1-15

   예수님은 갈릴리로 올라가시며 사마리아 수가라는 마을의 우물을 들렀습니다.(5절) 이때 요한은 시간이 정오(12시)였음을 기록합니다.(6절) 이시간은 팔레스타인지역에서 가장 뜨거운 시간이기에 대부분 낮잠을 자거나 집에 있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지역, 아무도 나오지 않는 시간,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찾아온걸 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이렇게 찾아오신걸 기억해야합니다. 그런데 왜 찾아오셨을까요? 예수님은 “물을 달라” 하십니다. 이것은 여인이 예수님께 구해야할 질문이었습니다.(10절)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았기에 거리적으로,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물을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수많은 목마름을 갖으면서도 이와 같은 장벽들 때문에 숨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도가 필요한것입니다. 마켓에 나가 노방전도나 방문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교회다니시나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셨어요?”하는 순간 사람들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문제와 예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해야합니다.(딤후4:2) 그러던중에 이 여인은 정말 구해야할 질문이 나옵니다. 요4:15…선생님, 그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때 단순히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나옵니다. 그런데 계속 설교를 듣다보면 내속에 목마름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더이상 목마른 물이 아닌 목마르지 않는 물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를 만나는 첫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부릅니다. 왜냐면 단순히 모르는걸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단계를 넘어가야 합니다.  

둘째 그녀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불렀습니다. 16-19

   예수님의 질문은 좀더 예리하고 강해집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6절) 이것은 그녀안에 숨겨진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모두에게 버림받고 현재 있는 여섯번째 남편도 정식 결혼을 해서 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안정된 가정과 삶을 갈급해 했는지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서 물길러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그녀를 곤욕스럽고 창피하게 할수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고 이 여인과 독대 한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곤욕스런 질문, 상처되는 말, 부담스런 요구”등을 마주할때가 있습니다. 그때 화을 내거나, 도망치지 말고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이것이 우리의 문제를 들추는 예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아 여인이 자녀의 아픔을 가지고 나왔을때 예수님은 그녀를 “개 취급” 했습니다. 이것은 상처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막고 있던 “자존심”을 깨뜨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혈류병여인이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때, 모든사람앞에서 “내 옷자락을 만진자가 누구냐?” 창피를 준것은 그녀를 막고 있던 두려움을 깨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38년된 앉은뱅이 병자에게 안식일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그의 불신앙을 깨뜨리고 믿음과 순종을 자극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안에 숨겨진 죄와 문제의 본질을 찌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말씀을 당시 가장 날카롭고 무서운 “좌우에 날선검보다 더 예리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의사가 암환자에게 “당신은 암입니다.” 진단하면 대부분 3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첫째 “분노와 부인”입니다. “그럴수없어 난아냐” 하며 다른 의사를 찾아봅니다. 둘째가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사람들을 안만나고 숨어지냅니다. 셋째가 “인정”입니다. 결국 받아들이고 치료받기위해 힘씁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폐부를 찌를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주님과 독대하며 나의 속사람을 치유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숨겨진 자신의 문제를 들추신 주님을 선지자로 불렀습니다.(19절)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셋째 그녀는 예수님은 메시야로 불렀습니다.  20- 26

   그녀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자 예배의 문제로 바꿔질문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이 예배하던 그리심산에서 드려야 하는지 아니면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에서 시온산을 향해 드려야 하는지 질문합니다.(19-20절) 중요한 변화입니다. 신앙의 초보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들과 씨름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문제가 있을땐 새벽예배도 열심히 드리지만 문제가 없으면 다시 영적으로 게을러집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된 사람들은 이 모든 문제가 하나님과의 만남인 예배안에 있다는것을 알고 예배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기서 영과 진리란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과 연결된 예배”를 말합니다. 요즘 황혼이혼이 급증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부부가 자녀를 키우느라 수십년간 한집에 생활하면서도 서로 일에 바빠서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못한채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습관적 예배를 드려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즉 온라인이냐, 대면이냐, 멀리있냐, 가까이 있냐?의 공간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문제입니다. 목사님 그렇다면 왜 멀리까지 대면예배를 나가야 하나요?” 질문할수있습니다. 중요한질문입니다. 우린 코로나기간동안 온라인예배가 육체적으론 쉽지만 영적으로는 얼마나 힘든지 경험했습니다. 화면을 가리니까 이불덥고 누워서 드리는 사람, TV 시청하듯 여기 저기 틀어보는 사람, 필요한 말씀만 살짝듣는 사람, 예배의 경건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좀더 집중할수 있도록 건강한 지체들과 대면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히브리기자는 마지막때에 대면모임이 어려워질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더욱 예배에 힘써야 합니다. 이걸 깨닫자 그녀가 고백합니다. “당신은 메시야입니까?(25절)” 처음으로 예수를 메시야로 부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느단계에 있습니까? 오늘도 참된 예배로 메시야를 만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합니다. 내속의 문제가 뭔지 알게 하시고 문제를 넘어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게하소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참된 예배자가 되게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목자/VIP) 11개의 목장모임을 위해 중보합시다. 영적만남을 이끄는 목자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VIP들과 목원들을 위해 이름불러가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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