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6 요3:22-36  나는 쇠하고 예수가 흥하는 삶

2022.03.25 07:4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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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13 요3:22-36  나는 쇠하고 예수가 흥하는 삶  새289/통204  주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후

  예수님보다 먼저 공생애를 시작했던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등장하자 예수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빛내는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 우린 이런 삶을 살수있을까요?

첫째 먼저 내가 죽는 삶이 되야합니다.  22-30

  세례요한은 당시 엘리야나 모세, 또는 메시야로 오해를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남녀노소 신분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나와 세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BTS정도의 인기와 교황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다고 볼수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30대 청년이 근처에서 세례요한과 비슷한 세례를 주는데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는 것입니다.(22-23절) 마치 우리 가계가 잘되자 주변에 같은 업종의 새가계가 들어왔는데 손님이 점점 그쪽에 몰리는 꼴입니다. 이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떨까요? 내 속사람이 확 올라오는 순간입니다. 이때 세례요한은 어떻게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수있었을까요? 그하나는 “하늘에 맡기는 삶”이었습니다. 27절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한이 이상황을 하늘에 맡기는 모습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사람은 “십자가에서 내려올수없습니다.” 아무리 앞에서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그저 하나님뜻이라면 될것이고, 아니라면 안될것이라는 “맡기는 자세”가 필요한데 우리는 답답하고 조급하여 못을 뽑고 내가 해결하려고할때가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하늘에 맡기는것이 내가 죽은 삶입니다. 또 한가지는 “선을 지켜야 합니다.” “선”이란 자신의 자리를 말합니다. 28절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부관계에도, 자녀관계에도, 직장동료관계에도, 심지어는 교회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그걸 잘 지켜야 합니다. 교통사고는 각자의 선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급하게 가려거나 옆 차량을 무시하고 차선을 변경할때 사고를 일으킵니다. 가장좋은 것은 선을 조심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것입니다. 아무리 급하고 힘들어도 선을지키고 양보하는것이 나를 죽이는 삶입니다. 또 한가지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친구의식이 필요합니다.” 29절에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차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의 기쁨을 나누는 친구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친구는 신랑의 들러리와 중매자로 결혼식을 돕는 역활이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왜냐면 이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할까요” 한국의 16대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선임자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리더십의 민낮입니다.(마10:26) 진정한 친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는 나를 도와주고, 나의 잘됨을 진정으로 함께 기뻐해줍니다. 경쟁자가 되지 말고 친구가 될때 손해보고, 나보다 잘되도 더 기쁨이 넘칠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룬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를 붙잡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나는 쇠하여 지고 예수가 흥해지는 삶이 되야 합니다.  

둘째 예수가 사는 삶이 되야 합니다.  31- 33

   사도요한은 세례요한이 쇠하여지면서 예수가 어떻게 흥해지는지 설명하는데 그 하나가 “위의 욕구를 따르는 삶”입니다. 31절에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위에 속한 자는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에 속한 자는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새롭게 생기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엣것에 대한 욕구”입니다. 주님이 원하고, 주님이 가고 싶은곳에 가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이것을 따라가면 그의 삶에 예수가 나타납니다. 결혼전에는 내가 갖고 싶고, 먹고싶고 좋아하는걸 사고, 마음껏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결혼후부터는 나보다 배우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예수를 영접한 우리안에 주님의 욕구가 생겼습니다. 예수가 살아나려면 주님의 욕구에 충실하면 됩니다. 또 하나는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34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록 더부어지고 성령이 부어지면 더말씀에 순종해지고 싶어지는 원리입니다. 마치 착한일을 하면 칭찬을 받게 되고 칭찬을 받으면 더 착한일을 하고 싶어지는 “선순환의 원리”와 같습니다. 한 청년이 한국에서 왔는데 차가 없어서 교회다니던 친구를 따라 주일이면 한인교회를 와서 한국음식에 한국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어 좋았는데 한가지 단점은 이 청년의 친구가 교회일에 열심히 봉사하다보니 늘 늦게 간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청년이 교회봉사가 하기 싫어서 식당쪽에 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장로님이 “교회에 처음왔는데 늦게까지 수고해주어 고맙네”라며 칭찬했는데 그말이 걸려서 일을 조금 도와주게 됬다는겁니다. 그런데 하고 보니까 보람이 생기고 다음주도 교회에서 더 열심히 하다가 신앙에 재미가 붙고 결국 그청년이 미주에 한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답니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때 두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하기싫고 예수를 피하고 싶은 거부의 마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를 쫓으려는 선한 마음입니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그마음으로 악순환, 또는 선순환이 반복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쫓아 살아가야 할까요? 사순절 기간, 우리가 한가지를 연습 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갈수록 쇠해지고 예수가 더욱 흥해지는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내욕구를 따라 사는게 아니라 주님의 욕구를 따라 선순환 되는 한주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선교지/모든 예배/ 환우들) 11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모든 주일예배/새벽예배/목장예배에 영적 부흥과 십자가를 경험하게 하소서, 소외된 지체들과 VIP들과 환우들의 건강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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