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5 요3:1-21. 사람이 다시 나지 않으면
2022.03.24 14:52
예수인교회
The Cross 5 요3:1-21. 사람이 다시 나지 않으면 찬370/ 455 주안에 있는 나에게
우리가 어디 여행을 가기를 계획을 하면 여행을 가기 전 내가 가는 곳이 어딘지, 또 그곳에 유명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좋은지 등을 궁금해 하고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한낮 여행을 갈 때도 그곳이 어딘지 궁금해 하는데, 정작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삶에 빠져 살다가 죽음을 직면하고서야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종교인은 많은데 기독교인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모습은 도덕적이고 기독인처럼 보이지만, 정자 그 내면은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고 거듭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바리새파 사람으로 당시 유대의 최고 권위와 권력 집단의 중요한 일원이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이었으며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아무리 유대 종교지도자이고 신앙에 열심인 사람이었음에도, 본문 3절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또 5절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남, 다시 난다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거듭난다’는 말의 뜻은 “위로부터 출생한다 (born from above).”라는 뜻입니다. 즉 생명의 근원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노력이나 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되어지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고 물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의미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세례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즉 세례를 받는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자신이 어둠과 죄악과 사탄의 권세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죄된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또 세례에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성도들이 세례를 받을 때, 물에서 나와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3번을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법에는 사람들 앞에서 3번을 크게 고백하면, 그것이 법적인 효과를 지닙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을 더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믿는다는 뜻은 ‘꼭 붙잡다.’라는 의미와 함께 ‘묶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스펄전 목사님은 “기독교인에게 믿음은 자신의 심장을 주님께 묶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슬람 교훈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늦은 밤에 ‘나스레딘’라는 청년이 가로등 아래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친구가 ‘여보게, 나스레딘, 무얼 그리 찾고 있나?’, ‘응, 집 열쇠를 잃어버렸어.’, ‘그래, 그럼 같이 찾아보세.’ 두 사람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열쇠를 찾지 못했습니다. ‘여보게, 정확히 어디쯤에서 열쇠를 잃은 것 같은가?’, ‘응, 저기 건너 편 길에서 잃었어’, ‘그럼 거기서 찾아야지 왜 여기서 찾는가?’ 나스레딘은 말하기를 ‘이 사람아, 여기는 밟고 저기는 어둡잖아!’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안, 은혜와 행복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과 환경에서 그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자유와 거듭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성령충만을 통해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상황과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어둠과 사망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빛과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또 성령님을 통해 그것을 깨닫고 믿고 중생케 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해 본문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틴 루터” 목사님은 이 말씀을 모든 복음의 핵심이며 이 말씀이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성령을 통해 그것을 믿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어, 이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The passion of Jesus Christ”라는 영화를 제작한 ‘멜 깁슨’ 감독이 자신이 이같은 영화를 만든 계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내게 감동이 아니라 충격이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향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것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의 고백이 “The passion of Jesus Christ”라는 대작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은혜 가운데 이 세상에서 담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니고데모’는 오늘 본문 후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이 만남 이후 그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조용히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개인 신앙 상담을 했다는 보람도 없는 듯이 아무 열매가 없는 바람이 지나가듯 그렇게 한번 지나가고 맙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가장 위험한 시간에 예수님을 위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으시고 순간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소망을 잃고 이제 자기들에게 닥칠 어떤 불이익과 고난의 예고가 두려워서 황급히 자리를 떠나 완전한 장소를 찾아 도망을 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유대 나라 남쪽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인데 제자들은 어느 틈에 북쪽 갈릴리에 가서 고기잡이를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빨리 도망을 갔으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위험 순간 ‘니고데모’가 나타납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한 밤 중에 몰래 찾아왔던 그가 이제는 빌라도 앞에서 당당히 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숨고 도망칠 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 편에 섭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물과 성령을 거듭난 백성으로서 오늘도 성령이 충만함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이 세상에서 담대히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내 삶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삶의 영적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 사역팀장과 서번트를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들과 한국에 새로 당선된 대통령과 정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