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

2015.12.08 20:1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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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마-2 사본

사명과 소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명”의 한자어는 부를”소(召)” 목숨”명()” 입니다 생명을 불렀다는 의미로 의역해보면 “삶을 불렀다”, “인생을 불렀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땅을 만들고 흙속에서 아담을 불렀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패역한 인간중에 “노아”를 부릅니다. 모든 민족중에 특별히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근데 이렇게 하나님은 역사속에 생명을 부를 때 마다 공통적으로 “부르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컵을 들을 때는 물을 마시고 싶어서 드는 것입니다. 안경을 잡은 것은 쓰고 싶어서 잡은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부를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목적을 갖고 인생을 부르는 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명”이 무엇일까요? 한자어로는 부릴“사(使)”, 목숨“명(命)”으로 “부른자의 부름에 목숨을 거는 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명의 마음을 “사명감”이라고 하며 이것이 가득 찬 사람은 “사명자”라고 합니다. 사명자는 자신의 사명에 목숨이나 인생을 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명감이 투철한 경찰관은 목숨을 걸고 시민을 구합니다. 사명감이 투철한 소방관은 죽음을 각오하고 불 속에도 뛰어듭니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려는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에스더가 그랬습니다. “하만”이라는 페르시아 대신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죽음을 당해야 하는 위기에 빠집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나와 부탁합니다. 네가 왕에게 가서 말을 좀 해다오 했더니 에스더는 그동안 한달간 왕이 찿지 않아서 왕에게 나아갈 수 없다고 두려움에 주저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궁은 왕이 부르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갈 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에스더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모르드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왕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에4:14) 네가 여기까지 은혜를 얻은 것이 그냥 너하나 잘살게 하려고 우연히 은혜 받은게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겠느냐? 너의 왕후의 소명과 사명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이 말 한마디가 자신의 인생에 사명을 모르던 그녀에게 사명을 알게 해줍니다. 사명을 깨달은 그녀의 대답이 달라집니다. “내가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고백하면서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반전 드라마가 쓰여 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명을 알게 될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명을 알았던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맛봅니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가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면서(출3장)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제자이면서도 사명을 몰랐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맛보고(행2:4) 사명을 알게 되면서

사도들의 거룩한 목숨을 건 행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추수감사절에 한해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많은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럼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생명주시고 복을 주셨을까요? 왜 가계를 주시고 왜 리타이어를 하게 하시고 왜 자녀를 주시고 왜 배우자를 주셨을까요? 만약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섭리라면 목적과 사명이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 사명을 발견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전혀 다른 하나님의 미션(사명)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12월은 사명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땅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이 사명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그분의 사명은 오직 한길이었습니다. “영혼 구원” 예수님이 탄생 하신 성탄절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순 연말연시의 연휴가 아닙니다. 교회의 선물 교환식 하는 날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화려한 행사들에 바쁘게 준비하느라 보내는 날도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는 예수님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며 그분의 사명이 우리의 사명이 되기를 생각해 보는 절기가 되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교회 안과 밖에는 하나님의 “희년”(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세계 열방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그분들과 예수의 사명을 나눌 수 있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금요예마집회 설교(사명자)중 발췌

담임목사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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