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2 요 1:29-42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2022.03.18 08:5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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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2 요 1:29-42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야 진정한 인생의 참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열심히 사는데 왜 인생 살기가 이렇게 힘드느냐?”고 질문을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번째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지내면서 낙타의 가죽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으며 금욕적인 삶을 살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외쳤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만난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예수님을 보고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라고 말하고, 34절에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 말씀은 세례요한이 자신 스스로는 예수께서 세상을 구원할 어린 양, 메시야 인지를 ‘몰랐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31절, 33절에 두 번이나 “나는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실과 은혜를 깨닫게 하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내 삶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본문 29절에 세례 요한은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분이 누구인지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 분이 누구인지를 깨달게 되었는데 그것을 깨닫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의지가 아니라 전적인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 상식 그리고 과학적으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내용들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섬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하시고, 그 십자가의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께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 없이, 성령충만 없이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은혜와 감사의 삶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속에서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성령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성령의 바다에 던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내 삶을 맡기고 순종할 때, 그 삶에 진정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참된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째로 본문에서 안드레와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약 성경에서 좋아하는 인물이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였던 ‘아드레’와 초대교회의 기둥이었던 ‘바나바’입니다. 성경의 기록에는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안드레’와 ‘바나바’는 예수님의 사역, 복음의 사역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에 나서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던 분들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난 ‘안드레’는 그 후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6장에 가서 다시 등장하는데,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5천명의 무리를 먹이신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이 기적을 보면, 다른 모든 제자들은 모인 무리들을 보며,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은 족히 필요하다’라며 현실과 상황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부정적인 상황에서 ‘안드레’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인도하므로, 예수님께서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게 하는 큰 기적을 행하게 하였다. 이처럼 안드레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가능성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과 새 역사는 ‘안드레’같은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에 의해 일어납니다. 성령님의 능력과 축복은 이런 긍정적인 믿음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드레’가 오늘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는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오는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묻습니다. 38절에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이 단어는 철학적인 용어입니다. 즉 “영적으로 너희가 찾고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즉 선생님이 머무신 곳에 가서 깊은 대화를 나누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이 너무 멋지십니다. “와서 보아라.”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이 너무 좋아합니다. 여기서 ‘보아라’는 단어는 앞에서 ‘세례 요한’이 사용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와서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오후 4시까지 함께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의미는 늦은 시간까지 그들이 예수님을 알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안드레’는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는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는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3절을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구약의 호세아서 6장 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다’는 의미는 단순히 성경을 통해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고, 고백되어지고 증거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삶속에서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안드레’도 메시아로 고백한 후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알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이런 고백을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향해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알리고,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번째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인 베드로 보면 이럼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42절을 보면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은 마태복음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간단하게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을 예수님 앞에 데려왔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몬’을 만난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게바(베드로, 반석)’으로 바꿔주십니다. ‘시몬’이란 이름의 뜻은 ‘광야, 사막, 황야’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광야같은, 사막같은 황무한 삶, 고단한 삶, 수고하고도 그 수고만큼 얻지 못하는 힘든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게바’ 즉 ‘베드로’ ‘반석’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약한 자를 강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연약한 자를 견고한 자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쓸모없는 자를 하나님께 소중한 자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먼지 같은 인생에서 바위 같은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 가의 ‘벳새다’ 사람입니다. 이 단어는 ‘어부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하루의 삶을 걱정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초석이 되었고, 교회의 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인생을 바꾸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하여 성령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내 삶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거하고,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 사역팀장과 서번트를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들과 한국에 새로 당선된 대통령과 정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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