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1  요1:1-18 복음의 시작 예수

2022.03.15 08:21

예수인교회

조회 수510

The Cross1  요1:1-18   복음의 시작 예수  찬453/ 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사도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시작은 “말씀이신 예수를 만날때 “ 시작됩니다. 1-6 

  사도요한은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몇가지로 표현하는데 그 하나가 말씀이 “창조의 시작점”이었던걸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태초부터 삼위일체로 하나님과 함께 있던 하나님임을 밝히면서 모든 창조전에 말씀이 시작되야 함을 말합니다. 즉 신앙생활에 말씀이 전부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은 말씀이란걸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린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가정과 일터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나눠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말씀을 듣고 전하고 계십니까? 또 하나는 말씀은 “생명의 빛”인걸 설명합니다.(4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보면 빛 안에는 측량할수없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단적예로 전기에너지를 필라멘트로 집중시키면 빛이 발생하면서 열에너지도 발생하는데, 이것은 모든걸 태우거나 사라지게 만들수있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 사라지는 것이 바로 어둠입니다. 어둠은 단순한 밝기만이 아니라 우울함, 더러움, 죄성, 죽음등의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몰아내는데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바로 빛이란 점입니다. 예를들어 어둠속에 있을땐 옷을 안입거나, 청소를 안하거나, 못된짓을 마음껏 해도 됩니다. 그러나 빛이 비취면 절대로 그럴수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정기적으로 빛을 쬐는것 만으로도 인간은 우울증, 면역력, 중풍, 탈모증, 약물중독, 각종 피로감, 충치, 알츠하이머, 근력감소등을 막아주며 다양한 질병의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즉 말씀이 인간에게 생명에너지를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말씀을 듣고 그말씀을 마음에 품는 것은 우리안에 어둠을 몰아낼 뿐 아니라, 생명력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분나쁜 뉴스, 두려움의 소식, 험담하는 말, 스트레스 되는 문제를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앞에 나와 생명의 빛을 충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복음의 시작은 “참 빛인 예수를 만날때” 시작됩니다. 7-13

   요한은 두번째로 예수를 참빛(Original light)으로 소개하고, 그 빛을 전하는 세례요한을 소개하는데 8절에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세례요한이 오리지널빛이 아니라 그빛의 전달자란점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빛은 모두 반사체입니다. 진짜 오리지널 빛은 태양빛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반사체들의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가짜”란 점입니다. 얼핏보면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창문밖에서 빛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전구에서 빛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보면 반사체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통해, 어느 교회를 통해, 모임을 통해 빛을 마주합니다. 그때 그것이 진짜 빛인줄 알고 매달리다가 상처입고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상처를 입는다는것 자체가 착각했다는 증거입니다. 진짜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또 하나는 “빛을 반사한다”는 점입니다. 오리지널만큼은 아니지만 반사체에서 비슷한 빛이 나와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착각한것은 그의 삶이 마치 오리지널 빛처럼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떤 빛이 나오고 있습니까? 밝게 비췹니까? 아니면 오히려 어둡게 하거나 빛을 굴절시키진 않습니까? 가장 좋은 반사체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고, 그대로 삶을 살려고 노력할때 거울이 됩니다. 너새니얼이 쓴 “큰바위 얼굴”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한 마을에 유명한, 얼굴형상의 큰바위가 있는데 언젠가 그얼굴과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올거란 전설의 바위인데 어니스트란 아이가 매일 같이 그 바위얼굴을 보며 위대한 삶을 꿈꾸며 살았는데 후에 이 아이가 그바위 얼굴과 비슷한 얼굴을 한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무리 더러운 수도관도 깨끗한 물을 계속 통과시키면 깨끗해지듯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흉내내고 반사해 간다면 우리도 예수의 반사체가 될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에서 일터에서 참빗인 예수를 반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복음의 시작은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를 만날때” 14-18

   요한은 태초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함께 하심을 선포합니다.(14절) 놀라운 지혜입니다. 요한은 어떻게 이런 지혜를 깨닫게 됬을까요? 이것은 하늘의 지혜입니다. 그는 과학자도, 철학가도, 변증학자도 아니였습니다. 그저 예수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늘 원하고 사람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우리중에 주님을 더알길 원한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관심 갖고 구해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보지 못한것까지 깨닫게 해주실것입니다. 특별히 요한은 14절 후반부에서 예수님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소개합니다.(14절) 충만하다는 것은 흘러넘쳐서 밖으로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예수를 품은 자는 “은혜와 진리”가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은혜는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반면 진리는 공의와 심판과 징계를 상징합니다. 이 둘이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너무 사랑, 사랑, 운운하는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법과 진리만 내세우는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둘의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16-17절을 보면 우리는 “은혜에 은혜를 더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17절에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통해 깨닫는 은혜를 받았고 신약시대에는 육신을 입은 예수를 직접보면서 은혜받았기에 “은혜위에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을 쓴것입니다. 그럼 목사님 우린 뭔가요? 성경은 오리지널도 없고 카피본이고, 예수님은 본적도 없고 본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막연히 믿는게 무슨 은혜인가요?”라며 과거를 부러워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보지도, 만지지도, 근거도 없는데 예수가 믿어지고 실제보다 더 실제로 느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에게는 없었던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천사도 우리를 흠모한다고 표현했습니다.(벧전1:12) 그래서 요엘 선지자와 바울은 지금 이시대를 “은혜의 시대, 성령의 시대”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놀라운 축복을 받은 세대입니다. 이때 온 힘을 다하여 예수를 깨닫고 그분을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사순절 기간 주님을 더욱 알게 하소서 여러가지 방법과 상황을 통해 주를 고백하며 깨닫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vip/환우및 목원) 11개의 목장과 목자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이번주 VIP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중보합시다. 목장과 교회로 연결되도록 기도바랍니다.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