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6 습3:1-13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는 백성

2022.03.10 15:08

예수인교회

조회 수523

스바냐 3:1-13.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는 백성

구약의 예언서들을 보면 모든 예언서는 크게 심판과 구원이라는 이 두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살펴보고 있는 ‘스뱌냐서’도 1장 1절부터 3장 9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에 내리는 심판을 선포하고, 3장 10절부터 20절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서에서 중요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 그리고 부흥이 진정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스바냐’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감추셨다’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 그들의 패악을 보시며 그 은혜를 감추시고, 지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바냐 첫 시간에 살펴 본 것처럼, 1장을 보면 하나님을 계속해서 ‘쓸어버리겠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는데, 이 뜻은 ‘진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 남김없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악의 모습에 심판을 말씀하시는 하나님도 끝내 우리를 버리지 못하시고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시 회복시키시고, 부흥케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1절부터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인 예루살렘의 부패와 죄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님의 충고도 듣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 4절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의 죄악을 말씀하시고, 5절부터는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 가운데 나타나도 그들은 여전히 죄악 저지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6절을 보면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8절을 보면 “불같이 타오르는 하나님의 분노를 쏟아 놓기로 결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교회에서는 ‘아멘’하지만 정작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도 싫어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도 힘들어 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도 않는 것은 아닙니까? 지난 주 주일 말씀에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삶의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은혜는 받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아무 변화도, 노력도 없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인생의 자리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의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70인역을 보면, 이 뒷부분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리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심판의 날,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는 백성은 어떤 백성이겠습니까?

첫 번째, 입술이 깨끗한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 상반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입술이 깨끗하다’는 말은 ‘정직하다’는 말입니다. 말의 정직, 삶의 정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깨끗하다’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이 ‘선택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정직함’은 상황의 문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백성으로서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믿음의 백성으로서 정직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른다’는 뜻은 ‘선포하다’라는 뜻인데, 이 선포는 특별한 말이나 메시지를 알릴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의 이야기는 좋아하고, 삶의 문제는 고민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 복음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담대히 선포하고 드러나고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섬기는 이는 보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9절 하반절을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를 섬기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바드’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일하다, 수고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과 연결되면 ‘섬긴다, 예배하다, 경배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세상이나, 특히 ‘출애굽기’에서 ‘애굽’이나 애굽 왕 ‘바로’와 연결되면, “고난을 당하다, 착취를 당하다, 허망하다, 허무하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바로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고, 남들보다 최선을 다해 산다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 삶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그 삶이 진정한 의미가 있고, 축복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없는 수고와 노력은 세상적으로 성공을 이뤘다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 보실 때에 헛되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직하고, 하나님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사는 인생의 자리를 바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재목: 내 삶에 정직함이 회복되고, 복음이 증거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되어, 이제는 내 삶을 하나님이 보호하시어 그리스도의 은혜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들)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 사역팀장과 서번트를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