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5 합3:1-16 부흥하게 하소서

2022.03.04 12:2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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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5  합3:1-16  부흥하게 하소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하박국서는 세상의 불의를 방치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의 이 질문의 태도는 질문을 넘어 하나님께 공격적으로 따지고 원망하는 매우 무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런 무례한 하박국을 책망하시거나 벌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를 긍휼히 바라보시고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무례하고 원망한 하는 하박국을 하나님은 책망치 않고 사랑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의 힌트를 그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의 뜻은 “포옹한다, 껴안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하박국은 어려움이 닥칠 때, 고난의 시간을 지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낙심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망을 해도, 불평을 해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그를 사랑하신 이유였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질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나의 가정, 직장, 사업, 삶의 자리에서 당하고 있는 그 고통과 아픔을 끌어 앉고 하나님 앞에 나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기오놋에 맞춘 예언자 하박국의 기도이다.” 바로 고난 가운데, 역경 가운데, 문제 가운데, 하박국 선지자가 했던 행동은 바로 그 문제와 아픔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한 백성이 재난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이것은 지금 하박국 선지가 느끼고 있는 절망과 좌절의 상황 표현한 것입니다. 장차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오는 바벨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어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절박한 상황,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박국이 놓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이것은 시기오놋에 맞춘 예언자 하박국의 기도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기오놋”의 뜻은 음악 부호로 “절정의 환희, 용솟음치는 기쁨”을 표현하는 부호입니다. 이것은 지금 절망가운데, 창자가 뒤틀리는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시작한 하박국의 기도가 결국에는 환희의 기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바로 고난가운데, 깊은 절망 가운데서도, 자신의 뼈가 썩고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는 하박국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임재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체험한 하박국은 그 고난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회복과 더 큰 은혜와 부흥을 소망하는 ‘시기오놋’의 기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 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는 말씀을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흥’이란 성경 단어의 뜻은 단순히 양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 의미를 보면 “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난다, 또는 다시 일어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흥은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고, 통치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기도를 통해 고난 중에서도, 역경 중에서, 그 고난과 역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새로운 부흥을 꿈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올바른 기도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기도’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이 단어는 “조율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기도는 ‘내가 원하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이뤄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조율한다, 나의 생각과 방법을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변화시킨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란 일방적인 내 욕심만을 이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되기 위해, 나의 이 문제와 고난의 상황이 하나님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되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반드시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로 나타난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마치 복권을 사는 것처럼, 혹시 모르니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금 내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듣고 계시며,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기도는 성령 충만을 통해 삶에서 지속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고 정작 그 삶에서는 그 기도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처럼 그 기도가 내 삶의 비전이 되고, 내 삶의 목표와 기쁨이 되어 내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국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웨슬리 목사님의 일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부흥회를 은혜가운데 잘 마무리하고 강대상에서 내려왔는데 한 젊은이가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께 다기와 옆에 있는 찌그러지고 구멍난 쓰레기통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지금 저는 성령충만을 받았는데, 제 삶은 마치 저 구멍나고 찌그러진 쓰레기통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그 받은 은혜가 다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또 반복되는 죄악의 삶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괴롭습니다.” 그러자 웨슬리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젊은이! 성령충만은 내 안에 성령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바다에 나를 던지는 것일세. 성령의 바다에 나를 던지면, 내가 찌그러졌던지, 구멍이 났던지 상관이 없네, 성령의 바다에 있으면 자네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할 걸세”

여러분의 삶을 성령의 바다에 던지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통치하실 수 있게 내 생각과 방법이 아니라 성령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며 담대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지금 내게 닥친 문제와 고통만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끌어 앉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며 간구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하박국처럼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새로운 부흥을 소망하고 꿈꾸는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 팀장, 서번트, 각 가정의 부모님들과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특별히 한국의 대선을 위해 중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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