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3 나훔3:1-19 니느웨가 멸망한 이유
2022.02.25 08:21
예수인교회
나훔3 나훔3:1-19 니느웨가 멸망한 이유 찬370장/통455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선지자 나훔은 나훔서의 결론에 와서 니느웨가 왜 망했는지 밝히며, 그 결론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 그들은 행한 것의 보응을 받았습니다. 1-4
선지자 나훔은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밝힙니다. 먼저 1절을 보면 “그들의 성을 피의 도성,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을 그치치 않는 도성”이라고 정의합니다. 피의 도성이란, 남을 늑탈하고 압제하고 남의 것을 뺏어서 만든 성이란 의미인데 그들의 잔인했던 전쟁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앗수르의 왕중에 “바나팔왕”은 점령지 사람들을 죽이고 그 머리를 피라미드처럼 세워 놓는걸 즐겼다고 합니다. 놀라운것은 2-3절을 보면 그들이 심판을 받을때, 동일한 보응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 음행과 마술을 일삼는 창녀를 비유하며 이들이 주변국가들을 속이거나 악한길로 이끈것을 고발합니다. 실제로 앗수르는 국가간에 평화를 협정하고도 뒤로는 전쟁을 준비해서 침략하기를 일삼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이런 앗수르의 행위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셨다는 점입니다. “캠브리지 고대사”라는 책을 보면 앗수르의 멸망에 대해 “역사상 앗수르만큼 완벽하게 약탈과 노략을 당한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기록할정도로 그들의 멸망은 비참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심은대로 거두고, 뿌린데로 거둔다고 말합니다.(갈6:7) 이 말은 오늘 우리의 삶은 어제 심었던 씨의 삶이란 의미입니다. 예를들어 오늘 새벽예배를 나온 분들은 “어제부터 일찍자고 내일 새벽예배를 나와야지!”라는 마음을 심은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과 상관없이 피곤함을 심은 사람은 새벽에 나올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 그것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영적원리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린 지나온 과거는 바꿀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바꿀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심는것으로… 새벽예배는 미래를 바꾸는 시간입니다. 여러 모임이나 만남들을 미리 기도하며 영적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선택해야 할 일들도 기도하며 내 감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삶을 향해 나가는 자녀와 배우자들의 심령을 기도하며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 이시간 우리가 무엇을 심어야 할지 기도하며, 가정의 내일을 바꾸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그들의 반복된 죄를 들어냈습니다. 5-17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죄를 드러내십니다. 5절에 이제 내가 너를 치겠다. 나 만군의 주가 선언한다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위로 걷어 올려서 네 벌거벗은 것을 뭇 나라가 보게 하고 네 부끄러운 곳을 뭇 왕국이 보게 하겠다. 하나님은 마치 치마를 들춰서 속을 보이듯 니느웨의 숨겨진 죄악을 들춰낸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때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죄가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 오면서 한국과 다른점중 하나는 밤에 집집마다 현관에 불을 켜놓는 점이었습니다. 가계들도 클로즈 했는데 불을 켜놓았습니다. 이유는 밝은곳에 도둑이 덜든다는 통계 때문이랍니다. 도둑은 어둡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찿아옵니다. 우리의 잘못된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요셉을 유혹했던 보디발의 아내는 “우리 집에 지금 아무도 없다”고 말하며 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를 범할수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란 의미 입니다. 저는 지나가다가 유리창에 비췬 내얼굴을 보며 이빨에 뭐묻었나 쳐다본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 유리가 안에서는 비쳐져서 다른 사람들이 절 보고 있습니다. 정말 챙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죄는 없습니다. 그리고 니느웨가 죄를 반복한 또다른 이유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가 가졌던것들을 조롱하십니다. 8절에 당시 천혜의 요새였던 테베처럼 니느웨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갖고 있었지만 테베처럼 망할거라 말합니다. 10절에 니느웨는 주변 성읍들을 의지 하지만 역시 망할거란 말입니다. 13절에 막강한 군대를 의지하지만 그들은 모두 여자처럼 약해 빠져 있을거라고 조롱합니다. 16-17절에 상인과 수비대가 메뚜기떼처럼 많지만 추워지면 전부 날아갈거라고 조롱합니다. 이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의지한 물질때문에, 사람때문에, 경험과 지식때문에 난 괜찮을거란 교만이 결국 나를 패망의 선봉으로 이끌수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오직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의 잘남을 내려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은혜의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그들의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18-19
나훔의 결론입니다. 18-19절에 앗수르의 왕에게 경고합니다. “너의 마지막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요? 그길에서 벗어나란 의미입니다. 성경 66권의 메세지는 이것입니다. “죄의 길에서 벗어나라” 니느웨가 행했던 죄의 길에서 북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유다는 남아 있었습니다. 이걸 제대로 봤다면 남유다는 다른길로 갈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100년후 남유다도 동일한 죄의 길로 망합니다.
옛날에 사역중 한 목사님이 거짓말을 자주 하는걸 보며 정죄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 내모습을 보며 회개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의 죄를 볼때 나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주변사람들의 허물이 보이면 나를 볼수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속의 들보를 깨닫게 하기 위해 남의 티를 보게 해준다고 표현했습니다.(마7:4) 니느웨를 보며 우리의 죄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큰 은혜를 받아 구원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 우상숭배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물질을 숭배하고 자식을 숭배하고 건강을 숭배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이웃을 미워하고 이용하여 성공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세상을 의지하며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더무서운것은 우리의 자녀들까지 그것을 가르치며 산다는 점입니다. 이길의 끝은 니느웨의 비참한 멸망입니다. 이것이 나훔이 주는 메세지입니다. 놀라운 은혜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비참한 심판과 죽음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주시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셨다는 점입니다. 반복되더라도 죄와 사망의 권세가 절대로 우리를 다시 끌고 갈수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일어서십시오. 가정안에 일터안에 오늘도 만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심으시고 그 열매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어제의 니느웨의 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기쁨을 갖고 오늘을 축복삶으로 만들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니느웨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늘 선과 감사를 심게 하시고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겸손하게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 예배) 10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모든 주일예배와 새벽, 목장예배들을 통해 감사를 심고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복음의 삶이 되게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