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1  나1:1-15  하나님의 위로는

2022.02.24 08:0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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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1  나1:1-15  하나님의 위로는 찬 419장/478  주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나훔서는 요나서 이후 약 100년후, 니느웨가 심판받게될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면 나훔은 공의를 강조해서 나훔서를 요나서의 후편이라고 합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때 결국 망하게 된다는걸 말합니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위로는 “사랑과 공의에 있습니다” 1-3

  나훔이란 “위로”란 의미입니다. 본문 1절에 등장하는 엘고스란 지역은 이스라엘 지명에 정확히 남겨져 있지 않을 정도로 미비하고 작은 도시로 봅니다. 요나는 열왕시대에 나올정도로 알려진 선지자였지만, 나훔은 거의 기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예기치 않는 사람이나 방법을 통해서도 전할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특별히 나훔은 2절에 첫 서두부터 하나님을 “질투하며 원수를 갚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질투란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걸 빼앗아 갈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예를들어 연인을 뺏길때,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길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던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뺏긴것입니다. 이것에 원수를 갚겟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죄악된 니느웨를 100년전 요나를 통해 용서하셨던 하나님이 왜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고 징계하시겠다는 걸까요.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는 걸 말해줍니다. 성경은 모든죄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말합니다. 때가 차면 반드시 그죄에 대해 결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중 하나가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걸”로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용서앞에 단서가 붙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는자”에 한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알고 그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완전한 공의가 있을때 이루어집니다.” 예를들어 한 청년이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것의 형량은 10년 감옥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은 주인이 죄에 대해 아무말도 없이 없었던 일로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그청년은 또다시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갔습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자신이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흘린 십자가의 형량이 얼마나 큰지 모를때 우린 또다시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에 오늘도 감사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밸런스를 맞출때 얻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넘치는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위로는 “진노와 구원”에 있습니다. 4-7

   나훔은 두번째로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합니다. 4-7절까지 “주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 모든 강을 말리신다… 산들은 진동하고 언덕들은 녹아내린다…주님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면 바위가 주님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주님의 진노를 열기로 표현하는데 바다를 말리고 모든 언덕이 녹아내릴듯이 강렬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100도면 모든 동식물이 익습니다. 가장 뜨겁다고 말하는 태양 주변의 온도가 약 1370도라고 합니다. 이정도면 녹는다기 보다 사라진다고 합니다.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의 분노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평상시 죄에 대한 경계심을 훈련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할때 마음이 뜨거워져야합니다. 남을 험담하거나 미워할때 우리 마음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교만해질때, 욕심을 부릴때, 욕정에 사로잡힐때, 우리안에 죄를 불타는 마음으로 잘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 주님의 진노는 우리를 살리는 위로가 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홍해를 가를때 주님의 진노의 바람이 홍해를 말리어 살리신것처럼 거룩한 진노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성령의 바람이 됩니다. 19세기 웨일즈 부흠운동이 일어날때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죄를 토하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시편 32편에 다윗도 밧세바를 범했던 죄로 자신의 뼈가 쇠하고, 주의 손이 짖눌러서 마치 여름 가뭄에 땅이 마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가뭄은 땅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불편함이 생길때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죽고싶을때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은혜”입니다. 태양에 가까울수록 열기가 뜨거워지듯 내속에 불편하고 심령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이 가까이 계신 증거입니다. 그때 도망칠것이 아니라 죄를 토설하고 영적 관계를 회복해야합니다. 오늘도 불편함과 매마름을 감사하며 그속에 계신 주님으로 위로받고 일어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위로는 “니느웨는 멸망시키고 유다는 구원하는 분”이란 점입니다.  8-15

   중요한 결론입니다. 당시 니느웨는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던 앗수르의 수도로 가장 강력하고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 외교술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절을 보면 마치 바다 물결이 모래를 쓸어내려가듯 한순간에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니느웨가 이렇게 강해진 이유는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잠시 징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근데 니느웨는 이것을 모르고 이스라엘을 필요이상으로 잔인하게 짖밝으며 BC726년에 아예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며 앗수르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받아서 쓰임받을때 겸손해야 합니다. 선을 넘으면 안됩니다. 가정에 은혜가 넘칠때, 회사가 잘될때, 학업과 인생이 잘 풀릴때 그때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결국 앗수르는 14절 말씀처럼 멸절되어 역사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반대로 멸절당한것 같았던 이스라엘에게 이런말씀을 주십니다. 15절 “보아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 평화를 알리는 사람이 산을 넘어서 달려온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아라 악한 자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다시는 너를 치러 오지 못한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한 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무너져도 다시 세워집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특권입니다. 간혹 하나님의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고 원수들이 잘되는것 같고, 나는 정직하게 사업했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고, 거짓말과 간궤로 편법을 쓴 사람들은 잘되는것 같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결론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한다는걸 말씀합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을 갖고 일어섭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짖궂습니다. 그런데 몇일후 맑고 따뜻해 진다는 일기예보를 봤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오늘의 궂은 날씨를 기쁨으로 즐깁니다. 그러나 이걸 모르는 사람은 오늘의 날씨로 낙망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의 날씨가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며 가는 사람입니다. “니느웨는 망하지만 유다는 회복됩니다.”

기도제목: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가정에 있음을 믿고 겸손하며 지혜롭게 자녀들과 배우자들과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들)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 팀장, 서번트, 각가정의 부모님들과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특별히 3/9일에 있는 한국의 대선을 위해 중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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