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ure 57 창 44:1-34 요셉의 반복된 시험
2022.01.20 07:54
예수인교회
Adventure 57 창 44:1-34 요셉의 반복된 시험 찬 342/통395 너 시험을 당해
요셉의 형제들은 만찬을 마친후 시므온과 베냐민과 양식을 구해서 기쁜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요셉은 가족들의 자루에 또다시 은잔을 넣어 도둑으로 몰아갑니다. 왜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런 억울한 시험을 반복할까요?
첫째 요셉의 시험은 “감춰진 죄에 대한 검증이었습니다.” 1-13
요셉은 집으로 돌아가는 형제들의 곡식자루에 돈과 은잔을 몰래 넣어 형제들을 “은혜도 모르는 도둑”으로 지목하게 합니다.(1-5절) 그러자 형제들은 7절에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인들 가운데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 “소인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그것이 나오면 그를죽여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 자신들은 청렴결백하다고 “호언장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의 곡식자루에서 은잔이 나오자 그들은 놀라서 옷을 찢고 통곡하는데 이것은 극한 슬픔과 억울함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요셉의 죄에 대한 테스트였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앞에 물건을 훔치거나 악한 행실은 절대 안한다는 도덕적 기준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첫번째 곡식 자루에 돈이 있을때도 양심에 걸려서 가져왔고 이번에도 그런일이 있다면 “죽이거나 종이 되겠다”고 맹세까지 한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들은 과거에 동생인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었지만 지금은 까맣게 잊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죄에 대한 우리의 착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속에 여전히 죄에 대한 습관은 남아서 자꾸 분노나 미움이나 두려움이나 거짓에 빠지게 할때가 많습니다. 도덕적, 윤리적 의식이 투철하다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건 아닙니다. 죄를 아는것과 죄를 이기는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인이나 공직자, 또는 사회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이 범죄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81년 11월에 체포된 대도 조세형씨는 도둑의 삶을 청산하고 목회자가되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간증과 설교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몇년후 그는 다시 범죄자로 수감됩니다. 숨겨진 죄성을 이기지 못한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일수록 이런 이중적 삶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감추어진 죄성을 반복해서 드러내시는데 특별히 억울한 일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억울한 누명이나 억울한 상황에 직면할때 반드시 그때 일만이 아니라 이전 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겉만 아니라 속사람도 거룩한 사람이 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철은 불가마속에서 오래 정련될수록 정금이됩니다. 억울하고 힘든일은 정말 쉽지 않은 고난이지만, 그걸 통해 우리를 돌아보고 겉사람만 아니라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요셉의 시험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검증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갖가지 어려움과 시험을 반복적으로 주며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양식을 구하러 왔을때 첩자로 누명을 씌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형제 시므온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돈과 은잔의 누명을 씌어 다시 한번 인질로 삼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도 계속된 기근을 통해 야곱의 자녀들이 요셉에게 다시 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왜 이같이 요셉에게 자꾸 나오게 만들었을까요? 여기서 요셉은 메시야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즉 야곱의 가정이 하나님께 다시 나오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던 물과 양식을 떨어뜨리고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아가게 만드셨는데 희한하게도 “그날의 만나는 그날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귀찮게 아침이면 만나를 받으러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자기의 힘으로만 살아온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하나님께 나와 하늘의 은혜로 살아가는 민족이 되게하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반복되는 시련과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징검다리 역활을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부모님께 연락드려보셨습니까? 우린 부모님께 긴급한 일이 있을때만 연락합니다. 타주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언제 우리에게 연락할까요? 돈떨어질때, 사고 났을때,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때만 연락합니다. 야곱의 자녀들은 서로의 관계만 회복될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야 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부부관계, 자녀관계, 동료관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도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 가정에 자꾸 어려운 일들이 발생한다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야 할때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일로 인해 더욱 깊은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는 자리가 되길 축언드립니다. .
셋째 요셉의 시험은 “변화에 대한 검증입니다.” 18-34
요셉은 특별히 막내 베냐민의 곡식주머니에 은잔을 숨겨서 죄를 뒤집어 씌었습니다.(12절)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에게 가장 큰 시련을 준 셈입니다. 왜그랬을까요? 베냐민은 형제들중 막내이고 아버지 야곱이 애지중지 자녀였습니다. 즉 20년전 요셉을 팔때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것입니다. 그때 요셉을 팔아넘겼던 형들이 똑같은 상황속에서 베냐민 한명을 희생시키고 자신들이 살것인가? 아니면 변해서 다른 결과를 보일것인가의 테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만이 아니라 모든 형제가 책임을 지고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16절) 그이유는 홀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기에 베냐민이 돌아가지 않으면 연세가 많은 아버지가 죽게 될거라는 것입니다.(30-31절) 놀라운 고백입니다. 왜냐면 이것은 20년전 요셉을 팔아넘겼던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아버지와 동생을 살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변하면 바라보는 관점이 바뀝니다.
한 여집사님이 결혼생활을 오래하면서 요즘 남편이 많이 달라진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말씀을 들으며 남편이 바뀐게 아니라 “내가 이전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었구나”라는걸 깨닫고 고백하는걸 들었습니다. 참 귀한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바뀌니까 상대는 그대로인데 더 사랑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한 영혼에 대한 마음에서 드러납니다. 우리주변엔 베냐민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성과를 독차지하는 동료, 학교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친구, 목장의 VIP나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 우린 이런 베냐민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희생하거나, 기다리거나, 답답해 지는걸 못견딥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사랑할수록 미움의 이유가 관심과 사랑의 이유로 바뀌게 됩니다. 부모는 가정에 자녀들중에 철이 없고 문제많은 자녀를 유독 더 관심갖고 돌보게 됩니다. 왜그럴까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야곱의 자녀들은 비로소 서로 사랑하는 가정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땅에서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길 원하십니다.(요일4:7-16)
이 한주 혹시 베냐민처럼 골치아픈 사람이나 지체는 없습니까? 지금이 사랑해야 할때입니다. 사랑하면 미움의 이유가 사랑의 이유가 됩니다. 오늘도 맡겨준 그 한명의 베냐민을 품고 가정과 목장과 교회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끊임없는 시험과 고난속에서 정금처럼 연단되게 하시고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어려울때만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과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인생되게하소서 한 영혼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 담임목회자/교역자/목자/사역팀장/서번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가정의 부모들이 거룩하게 서게하소서, 민족의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이 거룩한 삶으로 서게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