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ure 54   창42:1-25  더 큰 꿈으로 이끄심

2021.12.30 07:2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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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nture 54   창42:1-25   더 큰 꿈으로 이끄심   찬435/통 492 나의 영원하신 기업

하나님은 전세계에 기근을 통해 요셉의 형들까지 애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통한 더 큰 꿈으로의 이끄심이었습니다.

첫째 더 큰 꿈으로 이끌기 위해 “고난을 통해 이끄심”  1-5

창42:1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애들아 왜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느냐? 야곱은 요셉의 형들에게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야기 했지만 모두들 꺼리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20년전 동생을 팔아넘긴곳이기 때문입니다. 아픈 상처나 않좋은 과거가 있는곳은 근처도 가기 싫은것처럼 형들은 과거의 잘못때문에 주저했던것입니다. 만약 흉년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영원히 애굽을 가지 않았을것입니다. 이걸통해 하나님의 이끄심의 원리를 볼수있습니다. 하나는 “불가항력적 이끄심”입니다. 흉년이라는 저항할수없는 고난을 통해서 요셉에게 이끌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온천하 만물을 통한 이끄심”입니다. 하나님은 온천하의 주권자임을 나타내신것입니다. 또하나는 야곱의 가정을 위해서 이끄신 것입니다. 결국 요셉과 형들의 화해와 야곱가정의회복을 위해 온천하 만물을 움직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 우주의 주권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야곱의 한 가정을 살리고 회복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세계 재앙인 꼴입니다. 한편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온 우주를 움직일만큼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신다는걸 말합니다. 2020년 3월부터 전세계에 발생한 대재앙이었던 코로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모든 관계가 끊어졌고, 경제가 멈추면서 대공황이 왓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마져 클로즈 되었습니다. 사망자 숫자만 2차세계대전때 사망한 숫자를 넘어섯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세계 공장이 멈추면서 대기환경이 회복되었고, 가족들이 가정에 고립되면서 가족관계가 회복되었고, 교회들은 외형과, 소비, 형식중심의 예배에서 본질적인 영혼구원과 말씀중심의 교회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볼때 재앙이었지만, 구원과 회복이 되었습니다. 마치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과 영광으로 이끈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불가항력적인 고난과 이끄심을 경험하는 가정이 있다면, 하나님의 강권적인 구원과 회복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어느때보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구원과 회복에 반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둘째 더 큰 꿈으로 이끌기 위해 “과거를 마주하게 하심 “ 6-17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속에서 요셉의 형들은 억지로 애굽을 찿아와 곡식을 구입하는데 6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때에…” 이것은 서로 어쩔수없이 이끌려서 온때를 말합니다. 근데 그 자리는 요셉과 형들에게 마치 “원수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던 과거를 마주한 자리였습니다. 한 성도님이 자기를 괴롭혔던 직장상사에게 많은 상처를 입고, 다시는 안만나고 싶어서, 다른 직장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비슷한 상사를 또 만나면서 힘들어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상담학에서 인간이 상처를 받게 되면 주로 “회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를 회피하면 반드시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여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을 “직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문제와 마주하면서 그 당시 나의 문제점과 실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인도하신곳에서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야곱의 가정이 회복되야 장차 이스라엘민족으로 서게 되기 때문에 이 가정을 회복시킬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 불가항력적인 고난이 많다면 하나님이 쓰실려는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잘 준비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과의 회복”입니다. 과거의 실수를 마주하게 하는것은 우리 영혼의 회복을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형들은 요셉을 몰라봤지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일부러 형들을 첩자로 몰아서 일을 꼬이게 만듭니다.(9절) 이것은 보복이 아니라 과거의 실수와 죄를 피해가려는 형들에게(11절,13절) 스스로 죄를 깨닫고 진정한 회복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졌을때 대충 덮으려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들을 에덴에게 징계한것은 자신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지길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과거의 실수가 반복된다면 덮거나 회피할께 아니라 주님앞에 나아가 깊이 돌아보며 더 크게 쓰임받는 가정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세번째 더 큰 꿈으로 이끌기 위해 “진정한 회개로 초대하심” 18-25  

   요셉은 대충 넘어가려는 형들을 사흘을 감옥에 가두고 갑자기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18절)

사흘이란 이스라엘에서 완전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내생각이 죽고 하나님의 생각이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이때 요셉은 한명만 남아있고 나머지 형제들은 집으로 돌아가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한 이유는 요셉의 혈육이었던 베냐민을 보고 싶은것도 있었지만, 과거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을 마주하면서 형제들이 스스로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준것입니다. 결국 21절에 형제들은 과거의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린 사건을 떠올리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가끔 이만하면 됬는데 왜 이렇게 고난의 시간이 길까? 왜 풀릴듯 안풀리까? 생각될때가 있습니다. 더 깊은 통찰과 성숙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라고 말합니다. 생각하는 지성인이란 의미입니다. 인간은 깊은 생각을 통해 발전하고 비로서 인간의 형상을 회복해갑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근데 24절에 형들의 모습을 보며 요셉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코로나로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을 즐긴다고 표현한 분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고통앞에 속이 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배우자와 자녀를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보다 VIP들을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방관자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 과정을 통해 더깊이 회복되고 더 큰 꿈을 감당할만한 믿음의 가정이 되길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보다 더 큰 꿈”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배우자와 자녀들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주님께 더 깊이 묻고 생각하며 통찰력을 얻는 꿈꾸는 가정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마주하는 고난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하시고 보다 더 큰 꿈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게하소서

중보제목:(목:지도자들) 담임목회자,교역자,목자,사역팀장들을 위해, 각 가정의 부모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어려움과 고난속에 더큰 꿈으로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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