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예마집회1  창12:1-9  부르심에 반응하라

2021.09.21 09:5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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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예마집회1  창12:1-9  부르심에 반응하라    찬309/409  목마른 내영혼

이번 한주 특별새벽예마로 창17:1 말씀을 가지고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는 주제로 4일동안 진행됩니다. 우리는 펜데믹을 지나면서 마치 암흑속을 지나는 사람처럼 앞이 캄캄한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 어둠의 시간같습니다. 이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때에 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걸까요? 이 집회를 통해 그것을 발견하고 주님앞에 세움받는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첫째날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 그부르심에 반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뭔가를 할때 필요한 걸 집어들게 됩니다. 가령 글을 쓰려고 하면 펜을 꺼냅니다. 농구하려면 농구공을 꺼냅니다. 외출을 하려면 옷을 꺼냅니다. 이처럼 뭔가를 하려고 할때 그것에 맞는 걸 꺼냅니다. 하나님도 일하시려고 할때 그것에 맞는 사람을 불러냅니다. 그것을 콜링,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둠의 시대마다 그시대를 깨울 믿음의 사람들을 불러내셨습니다. 노아가 그랬고 사무엘이 오늘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헤르만헤세는 “부르심(소명)이 우리의 잠든 영을 깨운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이 부르심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깨워서 이곳까지 인도한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 부르심에 반응하는 아브라함을 보며 어떻게 하는것이 하나님앞에 서는것인지 첫날부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첫째 부름의 반응은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창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아브라함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했는데 그것은 “내가 있는 곳에서의 떠남” 이었습니다. 어떤분들은 아브라함의 떠남을 보면서 뭔가 새로움을 시작하기위해 단순히 지루하거나 힘든곳에서 떠나는 걸 믿음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떠남으로 나간다면 그분은 새로운 그곳에서 동일한 힘듬을 만날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떠남은 두가지를 의미하는데 그 하나는 “불순종의 자리에서 떠남”을 말합니다. 이것은 절대불변의 법칙입니다. 왜냐면 부르심은 순종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브라함이 있던 곳은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야하는데 불순종하여 머무른 하란이란 중간지대였습니다.(창11:31,12:4) 데라가 여기에 머문 이유는 갈대아우르와 비슷한 문명과 똑같은 달신을 숭배하며 살기좋은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요구한 떠남은 아버지 데라의 불순종”으로 머물러 있던 하란으로 부터의 떠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때마다 아버지 데라가 남겨놓은 기존의 말투, 행동, 삶의 습관, 인간관계, 가치관등에서 떠남이 요구됩니다. 이때 우린 적절한 중간지대인 하란에 머무르고 싶어집니다. 이것을 과감하게 떠나야 부르심에 반응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짜 복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2-3절까지 복이란 단어가 5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그 복중에 가장 큰 복으로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입니다. 결론인 3절을 보면 알수있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것이다… 하나님이 평생 동행하며 지키고 돌봐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근데 이들이 살던 갈대아 우르나 하란지역은 당시 가장 문명화된 도시로 부유하고 풍요로우며 물질의 가짜 복으로 둘러쌓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복이 보이지도 않고 찿을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곳을 떠나야만 진짜 복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성가 헨리나우엔은 미국 최고의 대학인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유명한 영성가, 신학자로서 화려한 교수의 삶을 살다가 돌연히 모든걸 버리고 프랑스 파리의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라는곳을 들어가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비로서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가짜 복을 떠나야만 우린 진정한 하나님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내가 붙잡고 있는 가짜복이 무언지 생각해봅시다. 물질? 사람? 자녀? 건강? 이것으로 부터 떠나야 우린 부르심에 반응할수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떠나야 할 자리와 복이 무엇인지 결단하며 하란이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 부름에 반응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4-9

  부름받은 인생에 기억할것은 많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룰때까지 포기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4절에 그의 나이 75세에 부름받아 떠낫다고 말합니다. 쉽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5절에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침내”라는 한 단어안에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걸 함축합니다. 가족들과 옥신각신, 재산정리, 오면서 만난 대적들, 추위와 고통들, 옛습관을 끊고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모든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배우자를”, “마침내 자녀를”, “마침내 인생을 바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근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오면 모든것이 준비되고 해결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창12: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은 이미 정착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렵고 위축되어 떠나려 하자 주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창12: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비록 상황이 열리지 않았지만, 비록 조짐이 않좋지만 이땅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럼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8절을 보니까 그는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갑니다. 그리고 또다시 벧엘을 떠나 네겝에 이릅니다(9절) 매번 그가 머문곳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은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확신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왜였을까요? 주님의 “은혜와 말씀”을 받을때는 좋지만 현실로 돌아갔을때는 “상황과 환경”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대부분 이싸움입니다. 중요한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삶으로 바뀌어져 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부르심에 잘 반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합니다. 운동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근육나오고 살이쪽빠질걸 기대하는 사람은 금방 포기합니다. 운동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려면 안쓰던 근육에 상처가 나면서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통을 딛고 계속 운동하면 그곳에 새로운 근육이 생기면서 근육이 더 커지고 그러면서 몸이 더 좋아지는것입니다. 몸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부르심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시행착오를 두려워 하고 실패할까봐 상처입을까봐 안움직이고 도전하지 않은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부르십니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 모험에 믿음으로 도전할수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말씀중에 우리가 떠나야 할것은 무엇인지? 내가 붙잡고 있는 가짜복은 무엇인지? 그것을 결단합시다.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것들을 붙잡고 하나님앞에 섭시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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