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ING 22 느12:44-47 예배가 회복 될때
2021.05.20 07:33
예수인교회
REBUILDING 22 느12:44-47 예배가 회복될때 찬 370/455 주안에 있는 나에게
성벽 봉헌식은 여러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상과 분명한 구별이 세워진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벽안의 성전예배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세상속에 관계와 질서가 회복된걸 말합니다. 그렇게 될때 하나님의 공동체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성전의 창고가 회복되었습니다.” 44
느12:44 그 날, 사람들은 헌납물과 처음 거둔 소산과 십일조 등을 보관하는 창고를 맡을 관리인을 세웠다. 유다 사람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고마워서, 관리인들을 세우고, 율법에 정한 대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돌아갈 몫을 성읍에 딸린 밭에서 거두어들여서, 각 창고에 보관하는 일을 맡겼다. 지난번 10장에서 이미 성전창고관리인을 세웠음에도 추가로 창고관리인을 세운것은 그만큼 창고에 헌물이 많아졌음을 말합니다. 그이유는 43절에 말합니다. 느12:43 그 날, 사람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으므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하니,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날이란 성벽봉헌식을 말합니다. 이날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사람들의 마음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로인해 감사함으로 헌금한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몇가지 물질의 원리를 알수있습니다. 하나는 “진정한 부유함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디스워튼이란 사람은 “돈 생각을 떨쳐내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많이 갖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늘 돈의 욕심에서 벗어날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벗어날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배부를 때입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산해진미를 주어도 더이상 욕구가 없습니다. 인간의 공허함을 채울수있는것은 오직 하나님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파스칼) 마음의 부요함과 기쁨이 채워지면 더 갖기보다 오히려 더 나누게 됩니다. 예배가 회복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필요한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깨닫게 될때 우리의 마음 창고가 채워지게 될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물질은 모으는것보다 잘사용해야 합니다. 칼릴지브란은 “돈은 현악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잘사용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잘못사용하면 불협화음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돈을 쓸줄 모르는 사람은 재산이 많아도 칭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44절에 보니까 “… 율법에 정한 대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돌아갈 몫을 성읍에 딸린 밭에서 거두어들여서, 각 창고에 보관하는 일을 맡겼다” 원래 재정이 돌아가야 할 곳에 돈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예배가 회복될때 진정한 부유함이 회복되고, 모으기만 하기보다는 나눔의 기쁨을 알고 마음의 곳간이 회복된 마지막시대에 가정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번째 “성전의 사역이 회복되었습니다.” 45-46
예배가 회복되자 두번째로 일어난 일은 성전맡은 사람들의 역할과 사역들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느12:4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예식을 베푸는 일을 맡았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도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시한 대로 맡은 일을 하였다. 먼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 섬기는 일과 정결예식을 베푸는 일을 맡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당연히 그들이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당연하지 못했던 이유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성전일을 버리고 세상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민생활하다보면 몇몇 중대형 교회를 빼고는 목회자가 2 Job을 해야하는 구조입니다. 근데 이것이 악순환을 만듭니다. 세상일을 병행하다보면 목회에 신경쓰지 못하니까 당연히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이럴때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하거나 헌금을 더 걷는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필요한것은 예배의 회복과 부흥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문지기들이 다윗의 규례대로 사역들을 감당한것을 강조하는데 사역을 정해진 기준없이 하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나 경험대로 하려다가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벌어집니다.46절에 노래하는 자들에게 “합창지휘자들이 있어서”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양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역은 반드시 하모니를 이루어야 합니다.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은 없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마른뼈의 환상에서 뼈들이 서로 이어질때 요란한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겔37:7) 아무리 좋은 사역도 처음에는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게 마련입니다. 이때 이소리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생기”였습니다.(겔37:10) 사역이 잘 세워지려면 기술과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예배회복을 통한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세번째 “성전의 지도자들이 회복되었습니다.” 47
느 12:47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도,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이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었다. 백성은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거룩한 몫을 떼어 놓았고, 레위 사람들은 다시 거기에서 아론의 자손에게 돌아갈 몫을 구별하여 놓았다. 성전에서 사역하는 레위인들과 아론의 자손들에게 돌아갈 몫이 제대로 채워졌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이 채워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 존중받게 된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능력있는 사역자들을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역자들에대해 무시할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영적지도자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뒤에 주님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1) 성경에 그 예가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은 거룩함과 거리가 먼, 오히려 범죄와 수많은 실수를 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창29:34,35:23,출32:1) 단순히 하나님의 선택으로 성전일을 보는 제사장이 된것입니다. 마치 자격없는 우리가 어느날 예수님이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볼때 그 자격 보다는 부르신 주님을 바라보며 존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문제가 많은 사역자나 지도자를 볼때 실망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존중해 주는것이 중요합니다. 1997년 박중훈씨가 주연한 할렐루야란 영화가 있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전과자가 어느날 한 목사님의 편지를 교회에 전달하다가 목사로 둔갑해서 개척자금 1억원을 횡령한다는 코미디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은혜가 된게 있습니다. 전과자가 목사노릇을 하는데 성도들이 진짜 목사처럼 존중해주자 이 전과자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결국 1억원을 포기하고 새롭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존중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존중히 여길때 우린 존중함을 받게됩니다.(삼상2:30) 오늘 가정의 배우자나 자녀들이 좀 부족해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일터와 공동체 안에 원치않는 지도자도 존중을 통해 가정과 공동체를 회복시켜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개인기도: 오늘도 우리마음의 창고가 풍성하고 부요할수있도록 하나님과의 예배가 회복되고 우리가정과 일터에 주님의 사역이 회복되게하소서
중보기도: (목:지도자) 담임목회자, 교역자, 목자와 사역팀자들에게 영적리더십을 주시고 맡겨진 영혼과 사명을 잘감당할수있게 하소서, 가정의 부모들과 민족의 지도자들과 대통령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지도자들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