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ING 19     느11:1-24   변방을 향하는 사람

2021.05.13 07:2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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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ING 19     느11:1-24   변방을 향하는 사람     찬 267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했지만 수도로서 제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예루살렘은 폐허였고 물도 없었으며 언덕에 위치했기에 살기에는 매우 불편해서 거주민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적 성벽을 쌓기 위해서 이런 변방에 사람들을 이동시키시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변방의 성을 지키시는 하나님  1

   오늘 본문은 11장 1절부터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10장 39절 후반부터 시작됩니다. 느10:39 후반…”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을것이다”… 이말은 그동안 예루살렘이 버려진 황무지와 같았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앞서 설명했지만 전쟁이후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약140년간 버려져 있었고 지리적으로 물이 나오지 않았고 경사져서 사람이 살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지역들이 살기가 좋아서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변방의 버려진 성이 되었고 주변 도시들이 오히려 중심도시로 발전한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140년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변방의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두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아무리 버려진 사람, 버려진 사역, 버려진 인생일찌라도 약속해주셨다면 반드시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배우자와 자녀, 기업이 마치 주님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다시 일으켜주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는 “성”은 주님이 지키신다는것입니다. 오늘 느10:39절 후반에 마치 우리가 성을 지키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우린 예루살렘성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변방의 페허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성에 느헤미야를 보내시고 사람들을 일으켜서 성을 지켜내고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시127: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우리가정과 기업과 사회는 주님이 세워가고 계시는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걸 놓치면 자꾸 헛된수고를 하고 밤새 깨어 고민하며 속병만 앓게 됩니다. 지혜로운자는 반석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입니다.(마7:24)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기업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주님앞에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변방은 반드시 중심이 됩니다. 2-24

   오늘 하나님은 변방의 예루살렘을 단순히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열방의 중심도시로 세워가십니다.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면 기독교의 영적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마20:16) 좁은길은 영광이요 큰길은 멸망의 길이다.(눅13:24) 섬기는 자가 높은자요, 섬김을 받는자가 낮은자다.(막10:44)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을 옮긴다.(마17:20) 이것이 기독교이 역설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원리대로 흘러왔습니다. 갈릴리 변방의 30대 한 청년이 수백년 유대교의 역사를 깨뜨렸습니다. 12명의 무식한 어부들이 열방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수천년간 전세계 기독교역사를 지켜온 카톨릭의 아성을 작은도시의 한 신부, 루터가 뒤집었습니다.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린 중심을 좋아하고, 변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산을 좋아하고, 큰길을 좋아하고, 높아지는 걸 좋아하지, 겨자씨나 좁은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방을 중심으로 만드시는 분이란걸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근데 여기에 한가지 더 기억할것은 변방이 저절로 중심이 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변방 예루살렘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됩니다.(1-24절) 절대로 쉽지 않는 희생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저와 아내는 꽃과 화초를 매우 좋아합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어떠한 싱싱한 화초도 저희 손에만 들어오면 얼마안가서 죽습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근데 저희어머니는 어떤식물도 살려내는 신비한 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죽인 화초는 늘 어머니께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다시 부활 했습니다. 근데 자세히보니 신기한게 아니라 그만큼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수시로 화초를 살피고 필요에 따라 거름과 물을 주었고 늘 꽃잎을 닦아주었습니다. 외출할때도 늘 화초생각이셨습니다. 신비한게 아니라 사랑과 수고와 섬김의 결과였습니다. 신약시대 예수님을 만난사람들을 보면 연약하고 소외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변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근데 단순히 그것 때문에 주님을 만난게 아니라 누구보다 가난한마음과 갈망과 열정과 믿음을 갖고 주님께 매달렸던 사람들인걸 보게 됩니다. 그때 변방이 중심이 된것입니다. 오늘도 변방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변방을 위해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길 바랍니다. 왜냐면 변방은 반드시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변방은 순종의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1-3,10,12,14,1619,21,24

   오늘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변방, 예루살렘에 느헤미야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이주시킵니다. 그 첫째가 모든 지도자들과 족장들을 무조건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습니다.(1절) 예루살렘은 수도이고 행정도시였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변방에 있는 세종시를 행정도시로 만들겠다고 결정한것이 약20년전입니다. 그러나 4번의 대통령과 4번의 정권이 바뀌기까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오랫동안 쌓인 관료제도와 전통과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 행정지도자들과 실무자들이 잘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리더들이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자녀교육도 엉망이고, 마켓도 없고, 치안도 엉망인, 미국으로 말하면 폭력이 난무하는 할렘가 같은 도시에 누가 가고 싶겠습니까? 각분야의 리더이기에 똑똑한 머리와 영향력을 가지고 반발하거나 자기 의견을 내며 불순종 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역을 맡은 각지파장(3-9절), 제사장,(10절), 성전지기(12절), 레위인(15절), 찬양대(17절), 성전문지기(19절), 성전일꾼(21절) 등 지도자와 리더들이 그대로 따라주었습니다. 둘째 부류는 자원한 사람들입니다.(2절) 성경을 보니까 특별히 이사람들에게 백성이 “복을 빌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자를 뽑을때 보통은 자원자를 뽑지만 실제는 지명하게 됩니다. 왜냐면 스스로 궂이 스트레스 받으며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류는 제비뽑힌 사람들입니다. (1절) 십분의 일을 추가로 제비 뽑아서 강제로 이주하게 했습니다. 이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힘들수있었습니다. 왜냐면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것은 이 세부류의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순종, 노아의 순종, 요셉의 순종, 모세의 순종, 다윗의 순종, 예수님의 순종, 제자들의 순종… 이들의 순종위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져 왔습니다. 오늘도 이런 변방에 하나님의 성벽을 세우는 거룩한 주님의 가정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변방같이 소망없는 성처럼 보이는 가정과 영혼과 이세대를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구하게 하소서, 변방을 살리기 위해 섬기고 헌신하며 순종을 통해 변방을 중심으로 세워가는 리빌더가 되게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 담임목회자,교역자,목자,사역팀장들이 한마음과 한뜻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섬기고 순종하며 성벽을 재건하게 하소서, 각가정의 제사장인 부모들이 영적으로 잘세워지게 하소서, 민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당의 이익과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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