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urch 16 엡 6:21-24  교회의 마침

2021.03.17 07:2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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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 16 엡 6:21-24  교회의 마침   찬150장 갈보리 산위에

  바울은 지금까지 에베소교회에 이땅의 성도와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오늘은 그편지의 마침인사로 두기고를 보내며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화장실에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땅의 교회의 끝맺음은 어떠해야하고, 교회가 이땅에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두기고를 세상에 보내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21-22

    바울은 마지막에 이편지를 전달할 두기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엡6:21 사랑하는 형제이며 주님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내가 지내는 형편과 내가 하고있는 일과 그밖에 모든것을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교회가 어떤 사람을 세우고, 어떤 사람을 세상에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기고란 인물은 바울의 3차전도 여행에서 만난 제자중 한명입니다.(행20:4) 우리가 알듯이 3차여행은 시작부터 마칠때까지 계획들이 계속바뀌었고 박해와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실한 두기고를 만난것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도와 교회안에는 늘 위기속에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어려움중에 그 위로를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두기고는 어떤 사람인가? 먼저 “사랑하는 형제”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그사랑을 나누는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받는것은 익숙하지만 나누기까지 오래걸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나눌때는 항상 풍성한 주님의 사랑에 매여있지 않으면 상처 입거나 시험들어서 오히려 안하느니 못한 사랑이 될수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때 상처를 입는다면 상대를 보지 말고 내가 무한한 주님의 사랑에 매여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두기고는 그런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 “진실한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원어 의미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종 중에 그식당에 다시오게 만드는 친절하고 신실한 종을 말합니다. 간혹 신앙에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는 분들을 만날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사람은 어떤교회를 다닐까?”, “저사람은 어떤 목장일까?”, “저사람은 어떤 가정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그것이 두기고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사정을 알리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엡6:22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고 나는 그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속내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근데 두기고는 바울의 속내를 잘 알고 남에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보통 신뢰관계가 아닙니다. 오래 전 골프장에서 권사님들이 골프치는데 각자 자기교회 험담을 4시간동안 앞다투며 이야기 했다는걸 들었습니다. 참안타까웠습니다. 두기고는 그런 속사정을 이야기한게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전달하며 상대가 오해를 가질만한 내용들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며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위로자란 “파라클레토스”로 가장 옆에있는 위로자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는 “보혜사 성령님”과 같은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주변에는 낙심하고 오해하고 답답한 가족이나 목원들이 많습니다. 이럴때 성령님을 의지하여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세워주는 이땅의 교회들이 되길 기도합시다.

두번째 세상에 “평안와 은혜”를 남기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23-24

  23절부터 24절을 보면 바울의 끝인사로 마치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늘 마칠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축복하며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서신서에 들어가는 끝인사를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인사로 변형해서 만든 바울만의 끝인사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표현을 단순히 반복된 끝인사 또는 마무리 정도로만 표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땅의 교회와 가정의 끝마침에는 삼위일체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예배가 마쳐지고 세상을 향해 나갈때 삼위하나님의 축복기도로 마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만이 아니라 목장모임, 가정모임, 친교모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만남과 모임이 마칠때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축복하는 평화란 단순히 가정에 싸움이 그친것, 경제가 안정된것, 문제가 해결된것등의 일시적으로 느끼는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안에 오실때 누리는 영원한 평안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붙잡았더니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고 폭풍중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40에 한대 감한 억울한 매를 맞고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목장모임을 할때마다 이런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시작전에는 부담도 되고 시간도 분주하게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찬송하며 주일에 나눈 말씀을 다시한번 나누기만 해도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오고 지체들의 나눔을 들으며 주님이 임재를 느낄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마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사람이 좋은 나눔이나 성품으로 만들어내는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며, 모든것을 감사로 고백하는 교회가 가진 평안입니다.(엡5:19-20) 그리스도인의 만남과 모임에는 세상이 그어떤 질병과 두려움과 문제들로 빼앗을수없는 주님의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세상속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합니다. 또한가지 바울은 24절에 교회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는 교회가 되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갚을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린 이 은혜를 주님께 받을때는 참 좋은데 우리가 이은혜를 세상에 나누어주라고 하면 참 답답해집니다. 왜냐면 우리인식속에 Give and take의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에 잘못한 사람은 혼나야 하고, 받은사람은 내놔야 하고, 나를 때린 사람은 똑같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것을 마18장에서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이 백데나리온의 빚을 진 하인의 멱살을 잡은 예화로 말씀하십니다. 이 예화를 잘 보면 한편으론 이해도 됩니다. 백데나리온이라도 빚을 진건 맞기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이 자신이 탕감받은 일만달란트를 생각하면 백데나리온이 부끄럽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민생활 하다보면 날마다 우리 앞에 엎드러지는 백데나리온의 문제가 참많은 걸 보게 됩니다. 그것만 보면 참 힘든생활인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때마다 일만달란트의 은혜를 바라보며 백데나리온의 문제를 놓는 것이 이땅의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이란 그 십자가의 일만달라트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특별히 이기간 가정안에 분쟁이 떠나가길 기도해야 합니다. 미움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가 떠나가도록 함께 기도하는 기간이 되길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인들이 머문자리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이 남겨지길 기도 합시다.

기도제목: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처럼 성도와 그리스도인들의 남은자리가 늘 주님의 향기로 채워지게 하시고 오늘도 세상속에 두기고 같은교회로 서게 하소서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화를 나누게 하소서

중보제목: (선교지/ 고난주간새벽예배)모든 선교지들마다 두기고 같은 선교사님들이 되도록 가정과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주시고 사순절 고난주간을 통해 이시대 교회들이 다시한번 이땅에 십자가의 은혜와 평화를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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