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urch 7 엡 4:17-32 에클레시아2
2021.02.25 08:26
예수인교회
The Church 7 엡 4:17-32 에클레시아2 시온성과 같은교회
4장의 주제는 에클레시아,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근데 우리가 뭔가를 부를때는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불렀내었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첫번째가 하나됨을 위해(엡4:1-6), 그리고 두번째가 성장하기 위해(엡4:7-16)라고 했습니다. 오늘 두가지 더 바울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첫째 에클레시아는 “옛사람을 벗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17-24
교회생활의 핵심중 하나가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옛사람이란 예수믿기전에 하던 삶의 습관들을 말합니다. 가령 욕이나 화를 자주낸다던가? 유흥을 즐기던 삶들을 벗고 새로운 예수의 삶을 살기 위해 이땅에 교회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나가면 나도모르게 말투나 행동들이 조금씩 바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선한 변화가 좀 지나면 멈춘다는 점입니다. 근데 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바지를 반쯤벗어 끌고다닙니다. 와이셔츠를 한쪽팔만 빼고 여전히 입고 다닙니다. 어떨까요? 자기도 불편하고 남도 불편하게 만들것입니다. 변화를 멈춘 신앙생활이 이렇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더이상 변하지 않을까요? 바울은 두가지 정도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7절을 보면 바울은 간곡히 부탁하며 “허망한 생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허망한 생각이란 예수믿기전에 가졌던 인생의 잘못된 생각이나 가치관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는 큰곳을 들어가야 해.” “좋은 학교나와야 성공한다.” “머니머니해도 돈이 최고다.”등의 옛날에 붙잡고 살아가던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 정반대의 삶인 그리스인의 삶을 살려니 힘들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변화를 멈추는 것입니다. 둘째는 “완고한 마음” 때문입니다. 18절에 완고하다는 원어의미는 오랜시간동안 굳은살처럼 딱딱해진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화인맞은 양심이라고 합니다. 불화살을 맞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자리가 딱딱하게 아물어져서 다음에 맞아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죄를 행해도 마음이 굳어져 있어서 잘 못느낍니다. 예를들어 거짓말을 자주하는 사람은 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늦는사람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상황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상대가 화나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양심이 굳어져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아니 해결할수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22절입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잘보십시오. 우리의 죄된 허물이 지난날의 방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때 이전것은 지나고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걸 말합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짓의 영 마귀는 날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은 사람인걸 까먹게 만들어서 자꾸 분노에 반응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염려하며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2:20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로 다시 살아난 하늘의 사람인것을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순절이 매년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망한 가계를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집으로 이사간후에도 헌집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삶은 이미 십자가에 죽은것입니다. 예배는 날마다 십자가에서 이것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는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오늘도 이땅의 교회가 되야 합니다. 그런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에클레시아는 “성령을 따라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25-32
25절에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즉 앞절까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우리가 행해야할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이 여러가지 나타나는데 크게 두종류로 나누어 집니다. 마귀를 따라 살것이냐, 아니면 성령을 따라살것이냐? 먼저 마귀를 따라 사는 삶을 봅시다. 이말씀을 읽는분중에 마귀를 따라 살고 싶은 분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그여지를 줄만한 사람들은 많을것입니다. 그래서 27절 악마에게 틈을주지 마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 “틈”이 무엇인가요? 25절에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웃에게 한다는 것은 가장 가까운 편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것입니다. 왜죠 거짓의 근원, 거짓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은거짓말을 할때 이미 마귀를 따라갈 틈을 주고 있는것입니다. 또한가지는 26절에 화를 내되 오래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탄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우리의 감정이 아닙니다. 화를 내는 순간 내가 통제하는것이 아니라 우리 본성인 마귀가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잔뜩 화를 낸후 내가 왜그랬을까? 후회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28절에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주 작은것도 훔쳐서는 안됩니다. 왜죠? 도적질이란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우린 남에게 해가아니라 남을 살려야 하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돈을 벌어 도와주라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것들의 중요한 공통점은 마귀는 처음부터 “나를 따르라” 하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미끼를 던져 그것에 따라가도록 만든다는 점입니다. 큰 거짓말은 안합니다. 그러나 작은 거짓말로 길들입니다. 큰 분노는 내지 않지만 작은 분노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소도둑질은 안하지만 작은 바늘도둑이 되게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쫓아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일 먼저 29절에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죠? 우리가 말로 지음받았고 말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쁜말”이란 원어의미를 보면 중상모략, 이간질, 부정적인말, 불평등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덕을 세우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목장이 성령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그럴려면 말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가지는 31절에 하나됨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31절에 “악독”이란 마음에 독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즉 상대에게 상처받은걸 계속 기억하고 그걸로 분노와 소란을 일으키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화해하지 못하게 막는것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상처 안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상처 질병의 상처, 말의 상처등 그러나 그때 우리가 성령을 붙잡고 의지하면 오히려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치유해주는 능력으로 만들어줍니다. 내가 아파보니까 아픈사람들의 마음을 알게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니까 그와 같은 아픔을 품어줄수있게 됩니다. 고난당한만큼 고난당하는 사람을 더욱 품고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입니다. 또 한가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32절에 용서입니다. 여러분 용서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입니다. 자꾸 용서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왜냐? 사실 상대는 내가 화가난것도 모릅니다.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나혼자 그미움에 사로잡혀서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순간 제일 먼저 내영이 살고 다시 하나님과 사람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것은 이와같이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가장 큰 목적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함이란걸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자녀들과 배우자들이 살아나도록 가정과 목장과 일터에 거짓과 분노와 미움과 다툼이 떠나고 생명을 살리는 말과 화해와 용서로 살아나는 이땅의 교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옛날의 말투와 습관과 허물을 벗고 성령안에서 살리는 말과 하나되는 노력과 상처입은 치유자로 가정을 살리고 자녀를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복된 교회가 되게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들) 담임목회자,교역자,목자와 사역팀장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하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게 하소서 각 가정의 부모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