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수없는 기쁨5 빌3:1-11 조심해야 할 것
2021.02.09 00:09
예수인교회
감출수없는 기쁨5 빌3:1-11 조심해야 할 것 찬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바울은 3장에 들어와서 기쁨의 공동체에게 중요한 주의사항을 줍니다. 2절에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일꾼을 조심하고 손할례당(표피를 자른자)을 조심하라고 세번경고 합니다. 왜냐면 이들이 주님이 주신기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랍니다. 신앙생활의 아이러니는 교회생활이 복되다고 하지만 실제 들어가보면 힘들고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게 됩니다. 왜죠? 이런걸 조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이 말하는 3가지 “조심”을 함께 봅시다.
첫째 “예수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1-2
1절에 “끝으로”란 표현은 마지막으로 중요한걸 말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반드시 “예수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정말 중요한 표현입니다. 예수안에서 기뻐하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붙잡으란 의미입니다. 왜일까요? 인생을 살면서 예수외에도 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일이 잘될때, 시험을 잘봤을때, 좋은사람 만났을때, 돈을 잘벌때, 고민이 해결되었을때, 등등 수많은 기쁨이 있을것입니다. 근데 이런 기쁨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2장에 보면 가나안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위기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혼인잔치의 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도주는 잔치집의 기쁨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였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언젠가는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우리 인생에 기쁨을 주는 포도주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건강도, 자녀도, 재정도, 학업도, 명예나 권력도 결국은 메마르게 되어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분은 교회다니는 기쁨이 성가대라고 말합니다. 어떤분은 친교, 어떤분은 비즈니스, 어떤분은 점심식사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낙(기쁨)입니까? 바울은 이런것들을 예수그리스도로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 빼앗기게 될거라고 말합니다. 왜요? 2절을 보면 교회에 존재하는 개(비난과 정죄난폭한자), 악한일꾼(맡은일로 교만한자), 손할례당(상처주는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걸볼때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는 이런 사람들때문에 주님의 기쁨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우리배우자와 자녀들이 인생에 메마른 포도주로 낙심하고 좌절해 있다면 진정한 예수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두번째 “육신의 노력을 조심해야 합니다.” 3-7
바울은 당시 빌립보교회안에 사람들을 정죄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율법주의자들과 손할례당에게 반박하기 위해 3절에 육신의 노력으로 신앙생활하는 삶이 잘못된것을 지적하며 4-6절까지 자신의 경험을 간증합니다. 그는 난지 8일만에 할례받고 베냐민지파의 왕족이죠, 율법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원으로 72명만 세워지는 정통바리새파였죠.(5절) 근데 이런 육신적 신앙생활의 결론을 뭐라고 합니까? 6절에 “율법은 흠이 없으나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이걸 잘묵상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할때 한교수님이 그런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을 교회 너무 자주 오지 말라고 하세요. 주일에는 빨리빨리 집에 가라고 하세요. 왜냐? 교회를 시끄럽게하는 사람들은 새신자가 아니라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들이란 겁니다. 우스개 소리였지만, 씁씁한 표현입니다. 신실한 성도들의 육신적 앎이나 노력이나 봉사와 섬김이 잘못되었다기보다 예수를 제대로 만나지 않고 육신적 노력만 하게 될때 결국 “자기의 의”를 드러내게 되고 그걸로 교회와 지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걸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만나면서 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엇습니다.” 그동안 추구했던 육신적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걸 안것입니다. 루터가 깨달은것이 이것입니다. 그는 카톨릭신부로서 죄를 지을때마다 육신을 자해하고 채찍을 치고 무릅으로 계단을 오르며 육신으로 해결해 보려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공허했습니다. 어느날 아무리 노력해도 헤어나올수없는 공허한 자신을 깨닫고 주님께 무릎꿇는데 이말씀이 들어온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우리가 얻은 의로움은 100% 주님이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일으킨 것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앙 안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육신적 노력을 초월하는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다시 일어나는 가정과 목장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세번째 사는게 아니라 죽어야 합니다. 8-11
바울은 육신적 노력의 한계를 깨닫고 7절에 이어 8절에 나의 모든 율법을 지키려고 했던 모든 노력이 배설물로 여겨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것은 우리의 노력이 잘못됬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른채 인간적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것이 잘못됬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알았다면 그것을 위해 하는 노력은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위해 날마다 노력한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는 노력”이었습니다. 11절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을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그가운데 진정한 하늘의 기쁨이 임합니다. 부부관계에서 서로 죽으려고 할때, 가족관계에서도, 직장동료관계에서도, 내가 죽으려고 할때 상대가 살고 거기서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짐 엘리엇선교사의 아우카족 선교이야기를 아실것입니다. 처음 아우카족의 섬에 도착하자마자 아우카족의 공격으로 엘리엇일행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때 엘리엇의 권총에 총알을 한발도 안쏜것이 발견됬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자고 총을 쏘면 그들이 죽기에 총을 쏘지 않고 그냥 죽음을 선택한것입니다. 훗날 그 죽음을 통해 아우카족 전체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에서 죽는 연습을 해봅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기쁨에 함께 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시다.
기도제목: 오늘도 세상이 유한한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을 사모하며 그기쁨의 가정과 일터되게 하소서.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위해 오늘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날마다 죽는 신앙을 연습하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VIP) 이번주 모든 목장모임과 목자들과 VIP들과 어려움 겪는 목원들의 가정을 위해서, 모든 목장마다 악한궤계를 이기도록 늘 성령충만하게하시고 서로 죽고 에수로 살아나는 생명의 목장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