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23) 막16:9-11 막달라 마리아

2020.10.28 05:0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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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시리즈23 막16  9-13 막달라 마리아    288/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말씀요약:    마가복음은 원래 16장 8절에서 마무리 되는것이었는데 9절부터 20절은 후에 삽입되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 첨부되어 있는데 그중하나가 막달라마리아의 이야기 입니다. 왜 그녀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을까요?

첫째  “일곱귀신이 나간 여인이었습니다.”  9

   9절 한절에 마가는 마리아가 어떤 여인이었는지 설명하는데 두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부활한뒤 주님이 맨 처음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마리아가 주님을 봤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표현입니다. 왜죠? 첫번째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들중에 첫아이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왜냐면 둘째가 그것을 따라갈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눔을 인도할때도 첫번째 나누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두번째 사람이 따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감격과 은혜를 가장 깊이 나눌수있는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먼저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근데 그것이 열두제자의 남성이 아니라 주목받지 못한 한여인을 찿아 왔습니다. 그것도 “일곱귀신이 나간여인”이랍니다. 왜였을까요? 죄가 클수록 은혜도 크기 때문입니다. 일곱이란 완전수로 완전한 죄에 지배당했다는 의미로 당시 귀신이 들리면 불과 물에 뛰어들기도하고, 거라사의 광인처럼 무덤가에 지내며 자기몸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갈수없는 여인이 었습니다. 그런 여인을 주님이 찿았다는 점입니다. 이점을 주목해 보고싶습니다. 이새벽에 우린 정말 주님에 목말라 나왔을까요? 아니면 주님말고 다른걸 구하기 위해 나왔을까요? 질병, 신분, 자녀, 물질, 사업, 등등,, 사실 이모든것은 주님만 계시면 모두 초월할수있는 문제들입니다. 주님이 없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걱정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마5장에 “심령이 가난하고 주린자”가 제일 먼저 천국을 볼거라고 말씀합니다. 이새벽에 힘든 코로나 기간에 주님이 가장 필요합니다. 이런 가난한 심령으로 나가길 기도합시다.

두번째주님과 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10

   10절에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재미있는 표현 입니다. 풀어보면 “정작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할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자신의 삶에 들어가자 모두 슬픔에 빠졌다.” 이런 표현입니다. 오늘도 우리마음이 공허하고 힘든것은 다른것보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고 있는 것일수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귀신이 떠나간 후부터 자신의 모든 생애를 주님께 헌신하여 주님과 동행을 시작했습니다.(눅8:2) 근데 그녀는 기적의 자리, 은혜의 자리만 있던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모두 도망친 십자가 아래에도 그녀가 있었습니다.(막15:40) 아무도 손대지 않는 예수님의 시신을 옮기는 자리에도 있었습니다.(막15:47). 아무도 오지않는 무덤가에 새벽부터 나와 지킨자가 그녀였습니다. 이런사람이 주님의 첫번째 부활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리 싸움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린 은혜의 자리, 복받는자리, 감사와 기쁨의 자리는 정말 좋아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치욕과, 오해와 비판의 자리에 주님의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어표현에 “Turn your scar into a star 너의 상처를 별로 만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상처를 피하면 말그대로 상처가 됩니다. 근데 그상처를 품고 가면 결국 그것이 진주가 됩니다. 십자가에는 이런 신비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품으면 거기서 부활이 나옵니다. 이새벽에 우리 가슴에 있는 십자가를 피하도록 기도할게 아니라 그십자가를 지고 갈수있는 담력과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세번째 “ 첫번째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11

   11절에 초대교회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중 한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첫번째 부활의 복음을 전한 전도자가 대사도였던 베드로나 야고보가 아니라 일곱귀신들렸던 그것도 당시 하대받던 여성이었다는 걸 마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특별한 누군가가 전하는것이 아닙니다. 말잘하는 사람, 목회자, 전도자, 성령충만한 사람, 뭔가 본이되는사람, 리더, 이런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은혜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오늘 이새벽에 말씀으로 부활한 주님을 만났는데 그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둘중하나가 됩니다. 가짜로 만났거나 거짓말장이가 됩니다. 마가는 누구라도 복음을 만났다면 그복음을 전할수있고 전해야함을 말합니다. 안그러면 오늘 이런 스캔들장면이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이날을 기억할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내가 전해야할 복음인데,,, 내가 듣고 있으니…거기다 믿지도 않았답니다(11절) 부끄러운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전해야할 복음을 자녀가 전하게 될것입니다. 장로가 해야할 말을 서리집사에게 듣게될것입니다. 먼저 섬겨야할 사람에게 섬김을 받게 될것입니다. 먼저된자가 나중되는 부끄러운 날을 경험하게 될거라고 말하는것입니다. 오늘 내가 은혜를 받았다면 먼저 전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순종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길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괴수중에 괴수요 죄인중에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복음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은혜를 붙잡고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를 이기고 상처를 별로 만들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 (수:선교지/교회예배) 모든 목장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을 충만케하시고 코로나의 어려움중에도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게하소서, 주일예배, 새벽예배, 목장예배, 모든 모임들가운데 주님이 임재하시고 충만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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