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
2015.10.05 23:32
예수인교회
진짜 싸움꾼 에베소서 6:10-14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움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싸웠고 요셉은 형들과 안좋았고 야곱은 에서와 다투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갔을때 주변국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어찌보면 오늘날 수많은 성도와 교회가 크고 작은 다툼과 싸움에 휘말려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문제없는 교회가 어딧서?”라는 말이 우리 입가운데 공공연히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중고등학교때 싸움을 못했습니다. 싸우면 맨날 때리기보다는 많이 맞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싸우는 방법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잘 싸우려면 힘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군지, 뭐가 주무기인지 뭐에 약한지를 파악하고 붙는것이 싸움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스포츠를 보면 상대팀의 전력을 가장 많이 파악할수록 승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병법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시대 크고 작은 싸움에 휘말려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 대상을 바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다툼과 싸움이 있는 교회들을 보면 담임목사님들의 싸움의 대상은 주로 반대파 장로님들입니다. 직분자들의 싸움의 대상은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대적은 교회를 곡해하는 무리들입니다. 이것이 대상을 바로 보는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서는 이들을 오히려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할 대상들과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는 곳이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이런 아이러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싸움의 대상을 잘못 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제2의 로마서라 불리는 에베소서에 모든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면서 맨 마지막 6장부터 너희가 영적으로 거듭났다면 반드시 경계하고 준비해야 할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와의 영적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엡6:10-11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면서 우리가 진짜 싸워야할 대상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너무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는것도 바람직 하진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가 영적인 세계를 너무 터부시 하는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성경은 처음 에덴동산부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인류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까지 하나님 나라와 세상,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와의 영적전쟁이 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혈과 육, 그사람, 그시대, 그 상황, 그문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라고 바울은 정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들의 싸움의 기술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싸움의 대가들은 결코 그 대상과 싸우지 않는것을 봅니다. 요셉은 원수들이었던 형들을 만나 복수할 상황이었음에도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요?(창50:10) 그분께 양도합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의 대신들이 말도 안되는 조서를 꾸며 자신을 사자굴에 넣을때에도 그는 그들에게 나아가지 않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다윗도, 히스기야도 하나같이 싸움의 대상이 혈과 육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영적싸움의 대가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죄를 대속하며 복음과 십자가의 능력을 이땅에 바로 세우려면 힘과 무력으로 침공했던 십자군 정복전쟁이 아니라 원수와 대적들 대신 십자가에 달려 세상과 하나님을 화평케 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피묻는 희생과 섬김의 사역이 회복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죽어져야 하고 성도는 끊임없는 희생과 섬김을 보이셨던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것입니다.
예수인 교회
박정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