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 묵상 8 마26:1-16 나는 누구인가?
2020.04.17 00:30
예수인교회
마태복음 26장 마26:1-16 나는 누구인가? 찬491/통543 저높은 곳을 향하여
말씀요약: 26장에 들어와 예수님은 모든 말씀을 마치고 죽음을 준비하는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이때의 분위기를 마태는 긴박하게 표현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장면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자들과 대제사장의 무리들1-2
예수님은 16장의 베드로의 신앙고백때부터 자신이 십자가에 결국 죽게될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해 줍니다 오늘 2절에도 “유월절에 인자가 십자가에 달릴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이후의 등장하는 제자들을 보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동문서답만을 합니다. 왜죠? 그들이 다른곳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데로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경청이라는 책을 보면 잘 말하려면 먼저 잘 듣는 태도가 필요한데 한국사람은 말하기, 쓰기는 잘하는데 듣기를 잘 못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말씀은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면 성령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딤후3:16) 그래서 말씀을 들을때는 항상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주님께 집중하며 들어야 할것입니다. 특히 이때는 대제사장과 그무리들이 가야바의 뜰에 모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때보다 제자들이 깨어서 주님과 함께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중 한명도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때를 회상하며 벧전5:8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깨어있지 않으면 제자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근신하고 깨어 십자가의 길을 잘 지켜갈수있는 참된 제자되길 소원합니다.
두번째 향유를 부은 여인 6-13
이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바로전 베다니 시몬의 집에 들러 식사를 하던중에 한여인이 나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것에 화를 내며 “낭비”라고 표현했습니다.(8절) 그도 그런것이 향유옥합은 당시 300데나리온으로 한일꾼의 1년 품삯이었기에 이렇게 예수님께 부어버리는 것보다 가난한 자들을 좀더 돕는것이 타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여인의 기름부음을 매우 크게 칭찬하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여인을 기억하게 하랍니다. 왜였을까요? 그녀의 드림이 이틀후 장사될 예수님의 계획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기가막힌 장면 입니다. 충성된 제자들도, 아니 지구상 누구도 예수님의 플랜을 몰랐는데 그녀가 그 죽음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도 몰랐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드렸을뿐인데 그것이 주님의 길에 쓰인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깨달을수도 없습니다. 근데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바랄때 성령님이 우리를 주님의 말씀과 뜻에 맞게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요14:21) 연인시절 상대를 정말 사랑하면 그사람이 좋아하고 바라보는 방향 보이고 따라가게 될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 믿음이 약하고 신앙이 짧아도 성령님이 이끌어줍니다. 마지막 시대에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신부가 되길 원합니다.
세번째 가롯유다 14-16
가장 안타까운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은삼십에 파는 장면입니다. 당시 은삼십은 노예 한명의 몸값이었습니다. 자신의 멘토를 노예한명 값으로 넘긴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도 그런것이 가롯유다가 돈을 아낄때마다 예수님은 책망하거나 다른 사람들앞에서 자신을 부끄럽게 하실때도 있었고 수제자중 한명이었음에도 자신의 의견은 거의 듣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에 서운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가롯유다가 배신할것을 알면서도 여러차례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것인데 그런 예수님을 오해했던 것을 알수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런 오해를 많이 할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기는 커녕 욕먹을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못된 사람들은 잘풀리는데 나는 안풀리는것 같을때 우리는 소위 시험에 들어 가던 길을 이탈할때가 많습니다. 이때 생각할 것이 가던길을 멈추고 주님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도 가롯유다와 똑같이 주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때 주님을 바라보며 돌이켰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그들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의 눈길을 따라 날마다 실수하지만 우리를 선한길로 인도해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제목
– 오늘도 주님의 길을 가며 때론 제자들처럼, 때론 향유옥합여인처럼, 때론 가롯유다처럼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것은 어떤 상황이든 어떤 실수를 하든 주님을 바라보며 돌이키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날마다 선하게 인도하여 선한길을 선택하는 복된 종들이 되도록 오늘도 성령하나님 주님만 사랑하게 하시고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중보기도: (금:선교지와 교회를 위해) 각목장의 선교지들과 선교사님들을 지켜주시고 예수인교회의 주일예배와 새벽기도가 각 가정에서 뜨겁게 드려지게 하시고 이런 시기를 통해 예배가 예배되고 말씀과 기도생활이 더욱 뜨거워져서 개인의 경건생활들이 살아나게 하소서 교회의 성전문제가 속히 해결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