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ise the Lord 13 시13:1-16 깊은 어둠에서 드리는 기도
2026.11.03 07:09
예수인교회
Praise the Lord 13 시13:1-16 깊은 어둠에서 드리는 기도 찬366/485 어두운 내눈 밝히사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목사는 일생 동안 극심한 우울증과 영적 침체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한 채 택시를 타고 템스강으로 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밤 런던 전체에 짙은 안개가 끼어 운전사는 몇 시간을 헤매다 결국 그를 다시 집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카우퍼는 집으로 돌아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안개 속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밤에 그가 찬송을 썻는데 바로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입니다. 오늘 다윗의 13편 시도 그와 같은 시입니다. 오늘도 이 13편의 시를 통해 어둠속에서 빛으로 슬픔속에서 찬송과 감사로 나가는 기도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얼굴을 구하는 기도 1-2
시13: 1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여기서 언제까지입니까? 라는 질문이 2절까지 5번이나 반복됩니까? 히브리 원어를 보면 “아드아나”로 4번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강조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강조하는 걸까요? 학자들은 다윗이 이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사울왕에게 오랫동안 피신하여 동굴을 전전긍긍했던 상황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 절망감은 단순히 동굴의 힘든 환경이나 오랜 기간의 피곤함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표현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외면한다는 절망감이었습니다. 여기서 “외면”이란 얼굴을 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뭐 그리 대수라고 다윗이 이토록 절망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람에게는 이것만큼 큰 고통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압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가상칠언중 4번째 말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기도는 제 9시때 계기일식으로 어두워지면서 마치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쳐다보지 않는, 한마디로 철저하게 죄인으로 외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장면이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 모욕 억울함과 죽음의 두려움이 가득했을텐데 그런것을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도 동굴의 비참함보다, 오랫동안 응답받지 못하는 답답함보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이 이런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이 다윗에게 외면하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도록 유도하시는 장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타지의 아들이 부모님께 연락 안하다가 돈떨어져서 마지못해 부모님께 전화하면서 부모님의 따뜻함과 사랑을 바라보게 되는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성도 여러분 인생에 어두움을 만날때 제일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안개를 돌파하는 기도 3-4
시13:3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서 “주 나의 하나님”의 원어를 보면 “야훼 에로하이”로 계약서에 처음 상대방을 지칭하는 형식적 용어로 쓰였습니다. 즉 다윗은 고통과 절망속에서 하나님을 부를때 자신과 맺었던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오히려 강청하며 담대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요구하는가?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력을 회복시켜달라는게 아니라 영적장벽이나 침체에 빠질때 발생하는 절망의 먹구름과 안개 너머의 주님을 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왜 이런 기도를 드렸는가? 4절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시13:4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 내 대적의 말과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반응이 신경쓰이고 두렵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것입니다. 직장에서 실수해서 상사에게 혼이 났는데 사람들의 비웃음과 무시하는 소리가 들리고, 직장 게시판에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은 자른다는 공고가 났습니다. 실수한번 했을뿐인데 이모든것이 나를 더욱 흔들고 두렵게 빠지게 하는 절망의 먹구름과 안개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짙은 안개가 생기면 한치 앞도 운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존파이퍼 목사님은 일명 “와이퍼 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자동차에 비가오거나 앞유리에 서리가 깰때 와이퍼를 움직이면 앞이 깨끗하게 보이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은 늘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데 문제는 안개가 끼거나 이물질이 끼기 때문에 수시로 근심 걱정 두려움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움의 안개에 집중하여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걱정과 염려를 떨쳐내는 것이 바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흔들림없이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을것이요. 두드리라 열릴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다윗은 안개가 몰려올때마다 언약의 주님을 부르며 돌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도 이런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사랑을 의지하는 기도 5-6
시13:5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5절에서 말하는 ‘주의 사랑’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입니다. 이 사랑의 특징은 서로 연인이 사랑하기로 약속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이나 상태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을 떠올리며 기도하니까 현재 다윗의 환경은 현재 1절이나 6절이나 아직 크게 변한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사울은 쫓아오고 있었고, 동굴의 차디찬 바람은 불고 있었고, 죽음의 공포와 비참함의 모욕감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담대해졌습니다. 왜냐면 환경을 바라보던 시선이 하나님의 변함없이 사랑하는 ‘헤세드’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6절을 보면 6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너그럽다는 것은 헤세드의 사랑이 흘러넘치도록 경험하게 도와주시는데 이것이 완료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미 구원얻은자의 기쁨이 흘러넘쳤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사랑에 미친 기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생각만 해도 그사랑의 힘이 내속에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청년이 이런 말을 해요. 지겨운 수업시간에도 힘든 알바시간에도 자꾸 웃음이 나오더래요. 왜냐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생각나서랍니다.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의 이 열열한 사랑을 의지했답니다. 그랬더니 지옥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 유명한 시편 23편을 쓴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넷마블린크 수용소 벽면에서 발견된 한 유대인의 글귀가 있습니다.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바라기는 이런 주님의 사랑을 믿고 오늘도 깊은 어둠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