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분주함 속에 숨겨진 영적 게으름
2026.10.19 16:25
예수인교회
중세 영성가들은 영적 게으름을 ‘나태함(Acedia)’이라고 불렀습니다. 나태는 단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짜 나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 마음을 쏟지 않고, 영적인 무감각을 덮기 위해 겉모습만 바쁘게 만드는 분주함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깊은 자기성찰과 십자가의 통회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대신, 몸만 바쁜 ‘분주함(Activity)’ 뒤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속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명확히 보여줍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열심을 칭찬하기보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의 노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정말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노력”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분주함이 주님과의 깊은 친밀함을 피하게 만든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의 사실, 즉 방 안의 고요함 속에 가만히 머물 줄 모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고요함(Silence)은 내 뜻과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영적 예배”입니다. 그러나 “분주함”이라는 우상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과 홀로 독대하는 “영적 고요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기도 자리에 앉아서도 세상 근심과 사역의 잔상으로 마음이 분주한 것은, 내 영혼을 주님께 맡기는 절대적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의 날을 세우지 않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마치 무뎌진 도끼날로 온종일 힘들게 나무를 베지만 “바빠서 도끼날을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나무꾼과 같습니다. 날을 세우지 않는 분주함은 영적 공허를 반복하여 결국 열매 맺는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는 “진정한 부지런함은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의 상태를 정직하게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분주함이라는 핑계 뒤에 숨겨진 영적 게으름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합시다. 손에 쥔 많은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의 발치에 머무는 “고요한 말씀의 시간”을 회복하십시오. 분주함을 멈추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세상의 속도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방향’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목양실에서
박정환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