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17 에9:16-19 구원이 주는 3가지 은혜
2026.10.06 07:04
예수인교회
믿음의 도전 17 에9:16-19 구원이 주는 3가지 은혜 찬 191/ 통427장 내가 매일 기쁘게
어떤분이 구원의 기쁨을 동전 구원의 가치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구원받은 기쁨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교회를 오래 다닌분들에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못느낀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구원받은 은혜를 날마다 곱씹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는 구원을 처음 교회 나왔을때의 감격이나 신비로움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걸 말해주는 이야기가 오늘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본문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이 가진 3가지의미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죽음을 거부 할 수 있는 은혜 16절
두개의 조서가 수산성 뿐만 아니라 127개 모든 도시에서 실행됬습니다. 하나는 모든 유다인을 자유롭게 죽이고 마음대로 물질을 뺏을수있는 조서와 다른 하나는 그렇게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세력에 저항하여 공격하고 물질을 안 뺏을수도 있는 조서였죠. 이들은 두번째 조서를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을 볼까요? 에 9:16 그러는 동안에, 왕이 다스리는 각 지방에 있는 나머지 유다 사람들도, 지방별로 함께 모여서 조직을 정비하고, 자체 방어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수들을 무려 칠만 오천 명이나 죽였으나, 역시 재산은 빼앗지 않았다 이들은 죽음의 조서를 막기 위해 두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는 함께 모였고, 다른 하나는 자체방어를 했답니다. 이것은 죽음의 조서를 이기기 위한 중요한 노력입니다. 전 한국에 안식년으로 몇개월을 홀로 보냈는데 그닥 좋지 않은점이 있었습니다. 생각싸움이 심했습니다.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말을 들었을때, 혼자 생각을 하면 항상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인기도와 예배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마지막때일수록 서로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 방어했답니다. 죽음의 생각 미움과 분노와 두려움과 걱정등의 부정적 생각에 대해 거부하며 내 마음을 방어했다는 것입니다. 잘보십시오. 75000명을 죽였습니다. 그럼 그 재산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걸 거부 헸답니다. 이것이 생명의 조서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롬8:1-2에서 죄와 사망의 법으로 죽을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으로 살아났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잡혀서 온갖 더럽고 부정적이며 악한 생각이 들어올때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생명의 법이 들어오면서 미움과 분노가 들어와도 용서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두려움과 걱정에 빠지지 않고 기도로 맡길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몇추전 목장에서 어느 목원이 목장에서 목장할때마다 자기의 부정적 생각이 바뀌고 온가족이 매우 안정됬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꼭 목장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죽음을 거부할수있는 생명의 법이 내안에 있음을 믿고 말씀으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둘째 영적 안식의 은혜 (17-18)
그런데 이 전쟁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기록하는데 17-18절입니다. 에9:17-18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달월 십삼일이었다. 십사일에는 쉬면서, 그 날을, 잔치를 하면서 기뻐하는 날로 삼았다. 그러나 수산에 사는 유다 사람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여 일을 벌였으므로, 십오일에는 쉬면서, 그 날을 잔치를 하면서 기뻐하는 날로 삼았다 이 전쟁은 12월 13일에 시작됬는데 14일에는 잔치를 가졌답니다. 이 잔치의 목적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죽음의 날을 구원과 기쁨의 날로 바꾸신것에 대한 잔치입니다. 다른 하나는 싸움이후의 쉼입니다. 17/18절에 두번이나 반복된 단어는 쉼(안식)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후 안식하셨듯 영적 전투를 벌인후 철저하게 안식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수산에 사는 유다사람들만 15일에 안식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수산성에 훨씬 더 많은 아말렉자손이 있었기에 하루 더 싸움을 연장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날짜는 하루 달랐지만 “이들도 안식에 참여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모든 유다인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악보에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듯 인간도 아름다운 삶을 살려면 반드시 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쉼은 어떤 쉼일까요? 어느 집사님이 휴가철이 되어 가족과 하와이를 다녀왔습니다. 근데 짜증이 가득했습니다. 이유인즉 음식과 날씨가 맞지 않아서 불평 불만에 결국 부부싸움만 하다 왔다는 겁니다. 근데 어느 가정은 힘든 멕시코 지역에 선교를 다녀왔는데 기뻐 보였습니다. 이유인즉 불쌍한 아이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반드시 쉼은 필요합니다. 근데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쉼의 시간에 하나님이 행한 일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구원해주신 은혜 감사, 때를 따라 도우셨던 은혜,등 세보면 만가지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걸 헤아리는 것이 내영혼의 진정한 안식입니다. 진정한 안식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셋째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은혜 19절
사람의 본능속에는 좋은 것은 꼭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맛있는걸 먹으면 자식 생각이 나죠, 좋은 물건을 사면 꼭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줍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인데 사실 하나님이 이 주신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나누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부림절 축제의 마지막 피날레 모습을 보십시오. 에9:19 성벽이 없는 여러 마을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정하고, 즐겁게 잔치를 벌이면서,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은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부림절로 정해서 이스라엘의 절기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이때 중요한 장면 하나를 기록했는데, 그것은 모든 유다인들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잔치 음식을 나누며 서로 즐겼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부림절의 관례가 되어 지금도 부림절이 되면 잔치의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과 축복은 내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내주변에 형제 자매와 나눌때 비로소 천국잔치가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22장에서 예수님도 천국잔치의 비유를 통해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청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이란 은혜 받은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을 나누는 것으로 완성되야 합니다. 스웨덴 속담에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좋은 것은 나누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우리집 VIP초청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가정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날마다 나눌수있는 천국의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