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16 에9:5-15  영적 전쟁을 할때 기억할것

2026.10.02 07:0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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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16 에9:5-15   영적 전쟁을 할때 기억할것    찬 370 / 통 455 주안에 있는 나에게

“죄와의 싸움에서 휴전을 선언하는 것은 사탄에게 항복하는 것과 같다.” — 존 오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삶의 문제 너머로,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많은 성도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음에도 삶의 문턱에서 반복해서 무너지는 이유는 영적 전쟁의 본질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은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이나 일시적인 평화 협상으로 끝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눅3장에 등장하는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때 치밀하고 철저하며 포기를 모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즉 절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조금 과하다 할 정도의 복수극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영적 전쟁을 진행해 나가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오늘 우리가 삶의 현장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할지 세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단호히 잘라내야 합니다. (5-9)

에9:5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원수를 다 칼로 쳐 죽여 없앴으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였다.

본문 5절은 유다인들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진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אָבַד)’는 단순히 목숨을 끊는 것을 넘어 ‘존재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 하다’라는 강력하고 단호한 사법적 처형을 뜻합니다. 특히 7절에서 10절에 이르기까지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바산다다, 달본, 아스바다, 보라다, 아달리야, 아리다다, 바마스다, 아리새, 아리대, 왜사다)을 한 명 한 명 정확하게 나열한 것은 매우 중요한 구속사적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 역사에서 하만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했던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의 후손(에 3:1)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맹세하셨으며, 신명기 25장 19절에서는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의 이름을 지워버릴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고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만의 아들들의 목숨을 단호히 잘라낸 것은 단순한 민족적 감정 보복이 아닙니다. 수백 년 전 사울 왕조차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 실패했던(삼상 15장) 아말렉 진멸의 영적 명령을,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단호하고 철저하게 완성해 내는 공의의 성취입니다. 죄의 뿌리와 대적의 유산은 적당히 살려두는 것이 아니라, 단호히 도려내야 함을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어느 성도가 예배 때마다 뜨겁게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삶에 얽혀 있는 이 더러운 거미줄을 제발 다 치워주십시오!” 그는 늘 반복되는 죄책감과 삶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수개월간 지켜보던 목회자가 기도가 끝난 후 그의 어깨를 짚으며 권면했습니다. “성도님, 이제는 ‘거미줄을 치워달라’고만 기도하지 마시고, 그 거미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거미를 찾아 단호히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삶에 나타난 죄의 결과(거미줄)만 보며 그것만 거두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거미가 살아 있는 한 거미줄은 내일 또다시 우리를 얽어맬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거미줄만 걷어낸 것이 아니라, 하만의 열 아들이라는 ‘거미의 씨앗과 뿌리’를 단호히 잘라냈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가두는 불신앙, 음란, 탐욕, 시기의 거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히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둘째 탐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10-11)

에 9:10 곧 유다 사람의 원수요 함므다다의 아들인 하만의 열 아들도 죽였다. 유다 사람들은 그들을 죽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재산은 빼앗지 않았다.

본문 10절과 15절에는 아주 기이하고도 위대한 문구가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내린 역전의 조서(에 8:11)에는 분명히 유다인들이 대적들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는 합법적 권한(‘발라즈‘, 탈취하다)을 부여받았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기회였고, 경제적 유혹에 가장 취약한 장년의 삶에서 눈앞에 지천으로 널린 재물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철저하게 탐욕을 조심하며 물질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사적인 보복이나 이권 다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인 ‘헤렘(חֵרֶם,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헤렘’ 사상에 따르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된 대적들의 모든 소유는 인간이 사적으로 취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사울 왕이 아말렉을 칠 때 탐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헤렘‘ 명령을 어기고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어(삼상 15장) 왕위에서 버림받았던 비극과 강력한 대조를 이룹니다. 유다인들은 조상의 아픈 실패를 기억했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취기와 물질적 탐욕을 조심하고 스스로를 절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싸움이 사사로운 약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는 거룩한 전쟁임을 온 천하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인생의 안정을 추구하다 보면 거룩함보다 눈앞의 물질적 유익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유익보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구하며 거룩을 지켜내는 사람이 진짜 승리자입니다.

셋째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12-15)

“남겨둔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남겨둔 작은 죄 하나가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에 9:12 12 왕이 에스더 왕후에게 말하였다. “유다 사람들은 도성 수산에서만도 그들의 원수를 오백 명이나 죽였고, 하만의 열 아들도 다 죽였소. 그러니 나머지 다른 지방에서야 오죽하였겠소? 이제 당신의 남은 소청이 무엇이오? 내가 그대로 들어주리다. 당신의 요구가 또 무엇이오?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여 주겠소.”  

첫날 수산 성에서 500명의 대적을 진멸하자 왕은 에스더에게 소청을 묻습니다(12절). 이때 에스더는 놀랍게도 이튿날인 아달월 십오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소서“라고 요청하여 하루 더 진멸의 기한을 연장받고 300명을 더 도륙합니다(15절).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잔인해 보일 수 있으나,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는 영적 싸움의 ‘철저성’을 의미합니다. 성경 역사에서 죄의 잔재를 남겨두는 것은 언제든 영적 이스라엘을 다시 무너뜨릴 수 있는 가시를 남겨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민수기 33장 55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라고 경고하셨고, 실제로 사사기 시대에 그 경고는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에스더와 유다인들은 이 뼈아픈 역사를 꿰뚫고 있었기에, 대적의 잔재들이 숨어들어 훗날 또다시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아달월 15일까지 기한을 연장해가며 끝까지 싸웠습니다. 죄의 세력은 적당히 타협하거나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어서는 안 되며, 그 뿌리가 뽑힐 때까지 철저하고 단호하게 끝까지 싸워야만 온전한 영적 평화가 찾아옵니다.

정원이나 텃밭을 가꿔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봄이나 여름철에 불쑥 자라나는 잡초를 바쁘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잎사귀만 잘라내면, 며칠 뒤 전보다 더 강한 잡초가 돋아납니다. 잡초를 뿌리뽑는 유일한 방법은 흙을 깊이 파내어 땅속 깊은 곳의 뿌리까지 통째로 뽑아내는 것뿐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종종 오래된 나쁜 습관이나 은밀한 죄를 마주할 때 “이 정도만 회개하면 되겠지”라며 죄의 잎사귀만 대충 잘라내는 영적 타협을 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남겨두면 영적으로 느슨해질 때 그 죄는 다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우리의 영혼과 가정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에스더와 유다인들은 첫날 500명을 죽인 것에 안주하지 않고, 숨어 있는 죄의 뿌리가 완전히 뽑힐 때까지 끝까지 싸웠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우리 삶의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있는 죄의 뿌리가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기도의 무릎으로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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