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13 에8:1-8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2026.09.29 07:1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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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13 에8:1-8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찬191/통427  내가 매일 기쁘게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빛나고, 고통이 깊을수록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망없는 깊은 수렁이나 위기를 만날때가 있는데 그때가 은혜인 줄 믿습니다. 에스더서의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하만의 음모로 온 민족이 몰살당할 큰 위기에 처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오히려 하만이 죽임을 당하며 일단락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죽었지만, 하만이 내린 조서는 유효했기 때문에 유대민족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싸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됬다고 끝나진 않습니다. 주님오실때까지 긴장하며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막힌 장벽이 도움이 됩니다. (1-2)

에8:1 아하수에로 왕은 그 날로 유다 사람의 원수 하만의 재산을 에스더 왕후에게 주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밝혔으므로, 모르드개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유다인의 원수였던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고, 모르드개를 왕 앞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하만의 집’은 단순히 집 한 채가 아니라 그의 모든 재산과 권력의 기반을 의미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법에 따르면 역적의 재산은 모두 왕실로 귀속되는데, 왕은 이를 에스더에게 하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8:2 왕은 하만에게서 되찾은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서 모르드개에게 맡겼다. 에스더는, 하만에게서 빼앗은 재산을 모르드개가 맡아 보게 하였다.  

왕은 하만에게서 회수한 ‘인장 반지(Signet ring)’를 모르드개에게 맡깁니다. 인장 반지는 왕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의 상징입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 위해 가졌던 그 권력이, 이제는 유다인을 살리기 위한 모르드개의 손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는 악인이 쌓은 부와 권력이 결국 의인에게 넘겨진다는 잠언 13장 22절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의 말씀이 역사적으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은 마귀의 악한 꾀를 들어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삼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회했던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절멸시켰다고 선언하며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었습니다. 핍박과 절멸의 도구로 쓰였던 로마 제국의 도로망과 인프라는 오히려 복음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원수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세운 판을 하나님은 반전시키셔서 복음의 도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둘째 눈물의 기도가 보좌를 움직입니다. (3-6)

에8:3 에스더는 또다시 왕의 발 앞에 엎드려 울면서 간청하였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 사람을 치려고 꾸민 악한 음모를 막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왜 또다시 에스더는 눈물로 애통해하며 왕앞에 위험을 무릎쓰고 나갔을까요? 그것은 하만은 죽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각 지방에 내려진 ‘유다인 진멸 조서’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에스더는 다시 왕 앞에 나간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울며 구했다’고 기록합니다. 4절에서 왕이 금 규를 에스더에게 내밀자, …  왕이 다시 ‘금 규(Gold scepter)’를 내밀어 에스더를 용납합니다. 이것은 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4장에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나아갔을 때보다 더 큰 정치적 모험이었다고 봅니다. 왜냐면 이미 하만의 처형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하는 왕에게, 페르시아 제국 전체의 법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왕의 자존심과 절대권력에 도전하는 일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내 민족, 내 친족의 멸망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며(6절) 목숨을 건 눈물의 탄원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의 이 애끓는 눈물을 통해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는 존 녹스의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과거 영국의 메리 여왕은 신실한 기도의 사람인 존 녹스의 기도를 군대 1만 명보다 더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에스더의 눈물은 단순히 연약한 여인의 눈물이 아니라, 민족을 가슴에 품은 중보자의 눈물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방탕한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눈물로 기도한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며 위로했고, 결국 어거스틴은 성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이 나라가 위기 앞에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낙심이 아니라 에스더처럼 보좌 앞으로 나아가 눈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오늘도 가정과 목장과 한영혼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통의 기도를 올려드립시다.

셋째 죽음의 조서보다 생명의 조서가 필요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감동으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를 돕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그것은  “왕의 이름으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는 페르시아의 법”(8절후반) 때문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법은 왕이라 할지라도 한번 내린 조서를 스스로 취소할 수 없는 엄격한 신치성(不可變性)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왕은 한가지 묘책을 냅니다. 그것이 8절입니다. 에8:8 이제, 유다 사람들을 살려야 하니, 왕의 이름으로 당신네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조서를 하나 더 만들고, 그 조서에 왕의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으시오. 내 이름으로 만들고, 내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은 조서는, 아무도 취소하지 못하오.”

왕은 기존 하만의 조서를 취소하는 대신, 모르드개에게 ‘왕의 인장 반지’를 주며 “너희는 너희 뜻대로 유다인을 위하여 조서를 쓰고 인을 치라”고 권한을 위임합니다. 이는 하만의 조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서’, 즉 유다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원수들을 물리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생명의 법을 제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유다인을 죽이려는 사망의 법을 이기는 생명의 법이 왕의 권위로 새롭게 선포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고소하는 고소장을 쓰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십자가의 피로 지우시고 승리의 선언서를 쓰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놀라운 구속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사탄은 율법과 죄의 권세를 가지고 인류를 향해 ‘사망의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 말씀처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조서는 변개할 수 없는 영적 법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망의 조서를 찢어버리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이라는 새로운 조서를 우리에게 써 주셨습니다. 최후 승리는 결국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의 생명의 법이 이뤄갑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법으로 끝까지 영적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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