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12 에스더 6:14 ~ 7:10 감춘 악을 드러내는 방법

2026.09.25 08:5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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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12  에스더 6:14 ~ 7:10   감춘 악을 드러내는 방법  찬502/통 259 빛의 사자들이여

인생을 살다 보면 악인은 잘풀리고 의인이 고통받는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과연 하나님은 어디계시는가? 정말 살아계시는가?”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절대로 악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말씀하는 것이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특히 오늘 보는 본문의 6장 14절부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악을 드러내고 심판하는지 말씀합니다. 이걸 통해 우리 삶에도 마주하는 악인을 통한 억울함과 고통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악인의 심판은 예고가 없습니다.  6:14- 7:4

에 6:14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시들이 와서, 에스더가 차린 잔치에 하만을 급히 데리고 갔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습니까? 13절에 하만은 자신의 친구와 아내 세레스에게 자기가 모르드개를 높여준 황당한 사건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랫더니 그들은 “당신이 모르드개 앞에서 엎드렸으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망할것같습니다”는 절망적인 예언을 들었죠. 근데 재미있게도 이 말이 끝나자마자 왕의 내시들이 들이닥쳐 하만을 에스더의 잔치로 급히 데려갔답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 생각할 시간도, 대책을 강구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걸 강조합니다. 악인을 보면 마치 계속 득세할것 같고 나의 억울함은 절대로 풀리 않을 것 같아도 반드시 때가 되면, 이처럼 아무도 손쓰지 못하게 예고없이 들이닥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상 못한 방법으로 일어납니다. 에7:3 에스더 왕후가 대답하였다. “임금님, 내가 임금님께 은혜를 입었고, 임금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면,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간청입니다. 나의 겨레를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청입니다. 하만은 에스더가 왕과 자기를 불러줬기에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자기를 망대에 매달 유대인이었다는건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인들이 손쓸틈도 없이, 쥐도새도 모르게 징계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여리고성도 무너질 기미가 전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고, 바울서신과 계시록에 그날은 도적같이 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악한 세상속에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예수인 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악인의 잘못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에 7:5 ~ 7:8)

에7:5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 왕후에게 물었다. “그자가 누구요? 감히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자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밝히시오

아하수에로 왕은 분노하며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때 6절에 에스더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킵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7:6). 이 상황속에 왕은 7절에 술잔을 내려놓고 잠시 일어나 왕궁의 뜰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예상못한 결과와 자기가 총애했던 하만에게 어떻게 벌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됬던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상황속에 하만이 에스더의 침상앞에 엎드려 에스더에게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8절에 왕은 이 장면을 보고 오히려 자기의 아내 에스더를 강간하려는 걸로 오해하여 결국 하만의 얼굴에 보자기를 씌웁니다. 이것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는 죄인에게 씌우는 고대근동지역의 관습이었습니다. 억울한데 하소연 한마디를 못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숨겨진 악을 드러내는 두번째 원리를 잘보십시오. 6절에 에스더가 하만을 “그 대적, 그 원수, 그 흉악한 자 하만”이라고 말합니다. 강력한 단어를 3번 연속으로 사용함으로 하만의 숨겨진 악독을 왕에게 각인시키는 수사학적 방법입니다. 우리가 악인의 악을 궂이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만천하에 알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살기위해 매달렸을뿐인데, 오히려 왕비의 강간범이 됬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런데 두건까지 쓰고 말한마디 못하고 죽게 된것입니다. 자기가 남에게 억울하게 한 그대로 보응해 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장면입니다. 우린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똑같이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꼭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신32:35,롬12:19) 왜죠? 하나님이 악인에게 인과응보로 징계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사람과 싸우지 말고 오히려 져주십시오. 왜냐? 악은 결국 하나님이 드러낼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컨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고,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모든 걸 주님께 맡기는 예수인들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악인의 잘못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에 7:9 ~ 7:10)

사실 여기서 끝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악인의 계략이 드러났고, 심판을 받으며 의인들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절을 더 추가합니다. 에7:9 그 때에 왕을 모시는 내시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르보나가 말하였다. “하만이 자기 집에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을 해치려는 자들을 제때에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세운 것입니다.” 그 때에 왕이 명령을 내렸다. “하만을 거기에 매달아라! 하만의 악행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내시 하르보나가 왕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합니다. 하만이 왕을 위해 고발했던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자기 집에 오십 규빗(약 22.5m) 높이의 나무를 준비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왕은 즉시 명령합니다.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7:9).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그 나무에 자기가 매달리게 매달리게 되죠. 그리고 10절에 의미심장한 말로 마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악을 다루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악인을 이렇게 “인과응보”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공의”란 걸 설명해 주는 장면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장자를 축복을 위해 아버지를 속였다가 결국 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여 수년간을 허비합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는데 결국 그 칼로 자신들의 자녀들이 칼부림나서 다죽습니다. 사울왕은 아말렉을 살려뒀다가 나중에 아말렉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뭘 말하냐면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바로 악을 다루는 하나님의 방법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시 9: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그래서 살면서 악인을 만나거나 악한 일을 마주할때 기억해야 할것은 “악을 악을 갚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하만과 같은 세상의 억압과 고난 앞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세상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 공의의 하나님이 한순간에 뒤집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 의의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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