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8 에4:9-17 내가 여기 서있는 이유 알려면
2026.09.22 10:15
예수인교회
믿음의 도전 8 에4:9-17 내가 여기 서있는 이유 알려면 찬358/ 통400 주의 진리위해 십자가 군기
앞서 모르드개는 유다 민족에게 내려진 조서를 에스더에게 전달하며,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위해 구하여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본문은 이 전갈을 받은 에스더가 처음에 느꼈던 인간적인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모르드개의 영적 도전과 깨우침을 통해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단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왜 나에게 지금의 직분, 지위, 영향력을 주셨는가?”에 대한. 중요한 메세지입니다.
첫째 주어진 자리에서 상황보다 주님을 보라 (9-12절)
9-10절에 에스더의 시종인 하닥이 모르드개의 정확한 상황설명을 에스더에게 전하자 에스더는 11절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에5:11 임금님이 부르시지 않는데, 안뜰로 들어가서 왕에게 다가가는 자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모두 사형으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법은 모든 신하들과 왕이 다스리는 모든 지방 백성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임금님이 금으로 만든 규를 내밀어서, 목숨을 살려 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나를 부르지 않으신 지가 벌써 삼십 일이나 되었습니다. 부름을 받지 않고 왕의 안뜰에 들어가면 규례상 누구든 사형에 처해질뿐만 아니라 왕이 자신을 부르지 않은 지 이미 삼십 일이 지났음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금 규(금 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엄격한 궁중 법률은 그녀에게 큰 공포와 두려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삼십 일‘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현재 자신을 향한 왕의 마음이 변했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 들었음을 의미했기에, 그녀가 두려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수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왕의 법‘이라는 인간적 한계와 두려움 때문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VIP전도를 할때도 동일합니다. 상대가 기분나빠하거나 거절당할까봐, 또는 상황이나 환경이 불가능해 보일때 두렵고 창피하여 시도조차 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가 있음을 보는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DL무디 목사는 “두려움은 환경을 크게 만들고, 믿음은 하나님을 크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정탑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은 거대한 아낙 자손과 견고한 성읍을 보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며 두려워 떪으로 공동체 전체를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장애물만 보았을 뿐, 그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동일한 현실을 보고도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시선을 만든 이유는 시선의 차이였습니다. 두려움을 보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보고 있느냐?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가정과 캠퍼스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마주하고 있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셔야 합니다. 이걸 통해 오늘도 그 은혜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주어진 자리에서 사명을 먼저 생각하라. (13-14절)
모르드개는 이런 에스더의 상황과 두려움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에4:13 모르드개는 그들을 시켜서 에스더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하였다. “왕후께서는 궁궐에 계시다고 하여, 모든 유다 사람이 겪는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어서 성경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구속사적 고백 중 하나를 선포합니다. 에4:15 이런 때에 왕후께서 입을 다물고 계시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마침내는 구원을 받고 살아날 것이지만, 왕후와 왕후의 집안은 멸망할 것입니다. 왕후께서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를 누가 압니까?” 저는 여기서 모르드개의 정확한 믿음과 담력을 보지만 다른 한면에서는 조금 냉정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듣니다. 어느 크리스챤 부모의 중학생 자녀가 어느날 울면서 억지로 교회가기 싫다고 하자 깊이 고민하다가 그럼 안가도 된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유는 신앙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언젠가 자녀가 스스로 믿을수도 있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을 확율이 훨씬 많습니다. 만약 그때 진지하게 자녀의 위치와 그 사람을 설명해주고 잘 이끌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린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 상황을 자주 마주합니다. 자녀를 통해, 목원을 통해, 주변 VIP를 통해 이해가 되면서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단호하게 에스더가 거절하더라도 하나님은 ‘다른 데(다른 방법이나 인물)’를 통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녀가 왕후까지 된것은 단지 개인의 부귀영화나 신분 상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배치된 ‘거룩한 사명‘임을 일깨워 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약 우리가 주어진 자리의 사명을 외면하거나 잊어버린다면 나에게 주어진 특권과 물질은 오히려 나중에 주님의 심판의 근거가 될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존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은 누리라고 준 특혜가 아니라, 섬기라고 맡기신 사명이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어 화려한 정계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위가 개인의 성공이 아닌 ‘노예제 폐지’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주어졌음을 깨닫고. 숱한 반대와 위협 속에서도 40여 년간 싸운 끝에 결국 영국 내 노예매매 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의회의 자리에 두신 “이 때의 목적“을 정확히 깨닫고 순종했던 현대의 모르드개이자 에스더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단순히 집안의 가장의 자리일까요? 아니면 가족들을 주님께 인도할 자리일까요? 단순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일까요? 학교에서 복음을 전할수있는 주님의 사람일까요? 단순히 직장인일까요? 그직장에 사명을 완수할 미셔너리일까요? 이것을 일깨워줄수있는 모르드개가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사명은 믿음의 도전으로 완성된다. (15-17절)
16절에 놀라운 장면이 기록됩니다. 에4:16 어서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게 하십시오. 사흘 동안은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말게 하십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 모르드개의 영적 도전에 에스더의 눈이 열립니다. 그녀는 방금전까지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못하는 모태신앙이었는데 갑자기 모르드개의 도전으로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모아 나를 위하여 삼 일을 밤낮 금식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한 후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위대한 신앙의 결단을 내립니다(16절). “죽으면 죽으리이다(위카아셰르 아마드티 아마드티)”라는 고백으로 죽으면 죽겠다는 강한 각오를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에잇 안되면 말지’라는 자포자기가 아닌, 자신의 생명과 민족의 운명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전인적 순종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왕에게 나아가기 전 먼저 ‘삼 일간의 밤낮 금식‘을 요청합니다. 아우카족 선교사였던 짐엘리엇은 “하나님의 일에 내 생명을 거는 순간, 죽음은 더 이상 종말이 아니라 영광의 시작이 된다.” 말했죠 그의 삶은 실제 영광이 됬습니다. 에콰도르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짐 엘리엇(Jim Elliot) 선교사는 대학 시절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 역시 자신의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현장으로 담대히 들어갔으며, 그의 순교를 통해 그 잔혹했던 부족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결단 역시 민족 전체의 생명을 살려내는 영적 반전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물질, 지위, 전문성, 혹은 환경을 허락한 이유는 뭘까요? 자녀를 주신 이유? 이민땅까지 인도한 이유? 단순히 내꿈을 성취하는것? 내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 물론 그런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인식할때 나와 우리가정의 목적이 바뀌고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것입니다. 오늘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한계의 벽을 넘어, 기도로 “죽으면 죽으리이다“ 각오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