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6 에 3:7-15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6.09.16 09:24
예수인교회
믿음의 도전 6 에 3:7-15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찬 510장 /276 하나님의 진리 등대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을 보면 다 끝난것 같은 순간에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며 12척의 배로 무려 133척의 배를 침몰시키며 놀라운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싸움은 세계해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승리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싸움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승산없는 싸움이었기에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모르드개의 승산없는 싸움이 나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처럼 궁지에 몰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깨어 있어야 합니다. (7-9)
에3:7 아하수에로 왕 십이년 첫째 달 니산월이다.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을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일지, 그 날을 받으려고, 하만이 보는 앞에서 주사위의 일종인 ‘부르’를 던졌다. 주사위가 열두째 달인 아달월 십삼일에 떨어졌다. 당시 하만은 부르(제비뽑기)를 통해 유대인을 학살할 날을 정했는데 놀랍게도 열두째달인 아달월 즉 11개월 후로 정해진 것입니다. 뽑을 수있는 가장 긴 기간이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장면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르를 던진날은 유대인들을 학살할 날이었지만 동시에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는 날이 되었고 이날을 부림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된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이런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홍해를 가를때도 여리고가 무너질때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때도 어김없이 반전이 일어났고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두렵게 하고 망하게 할것 같은 <우는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 울음도 사자의 모습도 전부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마귀의 계획을 알고 대처하기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엡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이 전신갑주는 당시 막강했던 로마군대의 갑옷을 형상화해서 머리에 투구, 가슴의 의의흉배 성령의 검, 믿음의 방패, 복음의 신, 진리의 허리때 등으로 표현되었지만 사실 이 모든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무장될때 이런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청년이 무디목사에게 찾아와 “목사님, 저는 혼자서도 충분히 믿음 생활을 잘할 수 있으니 꼭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말없이 난로 속에 타오르던 숯불 하나를 집게로 꺼내 바닥에 홀로 놓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하게 타오르던 그 숯불은 식어버리고 검은 재가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로 모여 있을 때는 뜨겁게 타오르지만, 혼자 떨어져 있으면 차갑게 식어 사탄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네.” 여러분 가정과 일터와 심지어 교회와 국가에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분열입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만들고 고립되어 불이 식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디아블로 나누는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가 어려울때는 무조건 깨어서 예수로 뭉쳐야 합니다. 더욱 기도하고 영적으로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게임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닙니다. 10-13
하만은 이일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 9절에 보면 은화 일만달란트를 기증합니다. 이 돈은 당시 페르시아의 1년 예산이 15000달란트일때 약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정도로 하만이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그리스 전쟁 후 재정이 많이 필요했기에 아하수에로 왕은 이것을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10절에 파격적인 결정이 주어집니다. 에스더 3:10 그러자 왕은,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는 인장 반지를 빼서,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인, 유다 사람의 원수 하만에게 맡겼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말만 듣고 자신의 반지까지 빼어주며 유다인 도륙을 승인하는 조서를 내립니다.
이처럼 세상의 법과 문화, 그리고 유혹이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걸 알면서 결정권을 뺏기는 이유는, 바로 거절 할 수 없는 압박 때문입니다. 마귀는 주로 재정적 압박, 관계의 압박, 건강의 압박, 심리적 두려움의 압박을 주로 사용합니다. 결국 세상적 관점에서 이일을 처리할 돈이 마련되었고, 왕의 어인까지 받았기에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법적 효력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다 끝난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실수하고 실패한것 같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때에도 마지막 결정권자는 하나님인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농구경기에는 버져비터슛이란게 있습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때 던지는 슛입니다. 이 한골로 경기가 역전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농구선수들은 마지막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아무리 이길 확률이 없는 경기라도 1초를 남겨뒀더라도 남은 힘을 다해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버저비터슛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버저비터의 하나님입니다. 홍해를 가를때도 마지막 1초를 남겨놓고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도 남은 1초에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휘슬을 불때까지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실패했다고 생각이 들고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기도줄을 놓지 마시고 영혼을 위해 가정과 일터를 위해 자녀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반전의 암시가 시작됩니다. 14-15
11절에 왕은 돈과 결정권까지 하만에 넘깁니다. 여기서 그 돈은 하만이 기증한 돈이 아니라 반역자들을 죽일때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곤 하는데 그돈을 말합니다. 결국 14절에 각 지역의 서기관들이 모여 각나라의 언어로 조서가 쓰여지게 되고 그 조서를 각 고을로 보내게 되는데 우리말로 말하면 파발마를 사용해서 급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15절을 보십시오. 에스더 3:15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보발꾼들이 떠나고, 도성 수산에도 조서가 나붙었다. 왕과 하만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앉아 있었지만, 수산 성은 술렁거렸다
이일을 결정했던 왕과 하만은 술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수산성은 술렁거렸답니다. 당시 수산성은 페르시아 수도를 말하는데 이곳의 모든 백성이 혼란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시 유대인들은 전국 각지에 약 400만명이나 살고 있었으며 수산성에만 70만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잘알듯이 유대인들은 재정과 관련되어 깊이 연관된 사람들이었기에 비즈니스와 경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서를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반대한 사람도 적잖게 있었기에 도시는 혼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몇사람의 잘못된 리더십으로 이뤄져 가는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학교와 회사가 몇몇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잘못되게 운영되는 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을것입니다.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다는 분위기와 암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람 조지뮬러는 상황이 절망적이고 암담할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더욱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란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