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5 에3:1-6 불공평한 세상에서 믿음지키기
2026.09.15 11:33
예수인교회
믿음의 도전 5 에스더3:1-6 불공평한 세상에서 믿음지키기 찬456장 /통509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에스라서에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에 대한 신앙의 개혁이었다면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에 남겨진 이민자들의 신앙도전기입니다. 먼 이민땅에서 이들은 민족적 차별뿐만 아니라 신앙의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것은 오랫동안 미국도 한국도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일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3장에 신앙의 위기가 고조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모르드개를 통해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나가야 할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불공평한 세상에서 “말씀을 지키라” 1-4
2절부터 모르드개는 갑자기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에3:2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신하들은, 하만이 드나들 때마다 모두 꿇어 엎드려 절을 하였다. 하만을 그렇게 대우하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을 하지도 않았다
문지기 였던 모르드개가 높은 관직을 받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그랬을까요? 학자들은 이 원인에 대해 1절에서 몇가지 해답을 찾습니다.
에3:1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하수에로 왕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등용하여, 큰 벼슬을 주고, 다른 대신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혔다. 첫째 억울했다는 것입니다. 1절에 이런일이란 지난번에 왕을 구했던 모르드개는 전혀 상을 받지 못했는데 얼마 후 아각사람 하만은 아무일도 안했는데 큰 벼슬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이유가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하만이 사울시대에 아말렉의 왕가의 후손임을 매우 강조한걸로 보면 왕족이라는 이유로 특혜로 받았을 수 있습니다. 어찌됬든 모르드개는 혈통과 다양한 차별을 받았기에 그 불만으로 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에스더서의 전체 문맥을 볼때 모르드개는 충성파였기에 사소한 개인 감정에 휘둘려서 잘못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아니란거죠. 그렇다면 뭘까요? 둘째 이유는 신앙의 절개란 것입니다. 1절 중반에 보면 아각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아각은 출애굽기 20장과 사무엘상 15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숙적 아말렉의 왕이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민족과 뜻을 대대로 거슬렀기에 영원히 멸해야할 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멜렉을 살려준 사울왕을 꾸짖을때 “니가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은 아말렉을 우상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모르드개는 단순히 억울해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자신이 절하지 않는 것은 신앙 때문이라고 하만과 그 일행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후자가 맞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신앙적 절개가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런식으로 신앙생활하면 교인들 사이에서도 율법적이라고 오해를 받거나 융통성이 없다고 바보 취급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이란 점입니다 삼상 2:30에 “하나님은 당신의 말에 무게를 두는자를 내가 존중할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볼때 하나님도 공평하진 않습니다. 왜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을 존중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만 무릎 꿇는 인생을 기억하시기 때문 입니다.
셋째 불공평한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라” 5-6
여러분 불공평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면 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일때가 많습니다.
에5:5 하만은, 모르드개가 정말로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자기에게 절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다
4절을 보면 하만은 그동안 모르드개가 자신의 민족과 숙적인 유대인인걸 알고는 그날부터 지켜본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 마음에 안들면 계속 지켜보면서 화를 키우지 않습니까? 이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에 사로잡혀서 분노의 종이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에5:6 더욱이, 모르드개가 어느 민족인지를 알고서는,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였다. 하만은,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는 온 나라에서, 모르드개와 같은 겨레인 유다 사람들을 모두 없앨 방법을 찾았다.
모르드게 한사람만 미워한게 아니라 민족전체를 미워하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어느 집사가 너무 믿습니다. 그럼 그집 와이프도 그집 자식도 다 밉게 보입니다. 어느 목원이 미워져요 그럼 그 목장 전체가 미워집니다. 이게 분노에 종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합니까? “저들이 하는걸 모릅니다.”(눅23:34) 이 주님의 시선하나가 우리를 분노로부터 자유케 해줍니다. 오늘 하루도 이 분노와 미움의 사슬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근데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모르드개의 신앙고백이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절한번 하면 쉽게 넘어갈 일을 크게 키운거죠. 근데 여러분 올바른 신앙에는 항상 위험부담이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항상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5:8) 악한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것 자체가 힘든일인 것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의 졸업연설에서 자기가 대학다닐때 깨달은 중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살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봐야한다 것이죠. 그래서 주님도 우리가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손해 볼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할것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 …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이 이 모든걸 이기셨기에 우리 또한 반드시 승리할거란 점입니다. 오늘도 이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갖고 계속 선한일에 도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