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4 에 2:19-23 하나님께 기억되는 공로.
2026.09.11 13:55
예수인교회
믿음의 도전 4 에스더 2:19-23 하나님께 기억되는 공로. 찬 302/통 408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오늘 본문을 보면 시험에 들만한 장면이 나옵니다.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구해줬는데 아무 상급없이 넘어갑니다. 어찌보면 큰 시험에 들만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모르고 계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겠죠. 우린 여기서 사람에게는 잊혀진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 기억되는 공로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맡겨진 자리에 겸손할때입니다. (19-20)
아주 중요한 두가지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에2:19 처녀들이 두 번째로 소집된 일이 있는데, 그 때에, 모르드개는 대궐에서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그때란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 모든 처녀들이 소집된 때를 말합니다. 근데 성경은 모르드개가 대궐 일을 맡아봤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었는가? 21절을 보면 대궐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역활을 했답니다. 얼핏보면 그럴 수 있겠지만 왕후의 삼촌으로서 볼때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회사 회장인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와이프의 하나뿐인 친인척에게 회사 경비를 시키겠습니까? 아니죠 계열사 하나 정도는 주지 않겠습니까? 근데 경비가 뭡니까?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신실하게 대궐의 문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사건은 20절에 기록됬습니다. 에스더 2:20 에스더는, 자기의 혈통과 민족에 관해서는, 모르드개가 시킨 대로, 입을 다물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슬하에 있을 때에도, 모르드개가 하는 말은 늘 그대로 지켰다. 잘보십시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데려다 키웠습니다. 그럼 그밑에 있을때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죠. 제국의 왕후입니다. 사극을 보면 자식이 궁에 입궐하면 부모라할찌라도 존대말을 쓰며 위치가 바뀌는데 에스더는 처음에나 지금 왕후가 되서나 똑같이 모르드개의 말에 절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과 환경이 변하거나 지위나 힘이 주어질때, 쉽게 교만해지거나 오만방자해져서 경거망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한결같이 주어진 자리에 감사하며 스스로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그랬을까요? 성경이 그걸 말하려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겸손이란 남앞에서 굽신대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모든것이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때 교만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만 보면서 저사람 때문에 내인생이 이렇게 됬다고 생각하는 것, 이사람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착각하는것입니다. 어제 또는 오늘 주어진 상황속에서 사람만 보지말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받는 겸손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둘째 맡겨진 일에 충성하라 (21-23)
이들은 주어진 직위에 대해서 겸손했을 뿐만 아니라 일도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21절 에2: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에, 문을 지키는 왕의 두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 중요한 사건이 모르드개가 문을 지킬때 이뤄졌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문화를 살펴보면 궁궐문 주변에서 사람을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갈때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눈썰미가 있던 모르드개는 그냥 우연히 들었다기 보다는 매일같이 열심히 문을 지키며, 수상한 사람들을 잘 체크하고 의심가는 사람들은 2중 3중으로 면밀히 살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문지기의 직분을 소홀히 생각하며 맨날 불평과 잡담하며 책임감 없이 시간만 때웠다면 절대로 이런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날마다 충성스럽게 감당했다는 걸 말합니다. 또 한가지 22절을 보면 에스더2:22 그 음모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 왕후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또 에스더는 그것을, 모르드개가 일러주었다고 하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런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자신이 보고해서 큰 상급을 받고 유명해 질 수도 있는데 그는 이런 공로를 오히려 에스더에게 넘겨줍니다. 우린 어떻습니까? 힘든일은 남에게 잘 넘기지만, 칭찬 받을일은 절대로 넘겨주기 힘들죠. 모르드개는 자기의 위치와 본문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는 어떻습니까? 삼촌이 자신에게 알려줬기에 그냥 자기의 공으로 돌릴 수 있었는데 “이 모든것은 모르드개가 한 일 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참 아름다운 협력과 신뢰의 모습입니다. 이런 충성과 협력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 맡겨진 일을 신뢰하라 (23절)
드디어 문제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스더 2:23 사실을 조사하여 보고, 음모가 밝혀지니, 두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이런 사실은, 왕이 보는 앞에서 궁중실록에 기록되었다 드디어 조사가 들어갔고 음모가 밝혀져서 반역을 꾀하던 두사람은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궁중실록에 기록만 되었을뿐 왕의 생명을 구한 엄청난 사건임에도 어떤 벼슬이나 포상도 내려지지 않고 그저 궁중일기에 한줄만 기록됬다고 말하고 넘어갑니다. 이때 뭐가 찾아옵니까? 섭섭마귀가 찾아옵니다. 어느 성도가 목장에서 어렵게 집을 오픈하고 정성껏 식사대접을 했는데 갑자기 다음주부터 목장을 안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야기한 끝에 원인을 들어보니 아무도 음식에 대해 맛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든이야기 같지만 실제 이야기입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것에 대해 한마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학자들은 전후문맥을 보며 모르드개는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추측합니다. 왜냐면 믿음으로 고아였던 에스더를 데려다 길렀고, 포로신분인데다 고아였던 그녀를 왕녀로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됩니다. 거기다가 에스더가 왕후였음에도 단한번도 그녀를 통해서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딱 한번 요구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가 왔을때 에스더를 향해 “하나님이 너에게 왕후를 준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냐” 말합니다. 즉 모르드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고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때를 기다릴줄 압니까?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해가 뜰것을 믿는 사람이 평안이 잡니다. 재정이 채워질것을 믿는 사람이 불안을 이깁니다. 협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을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에 흔들리지 않고 수많은 신앙의 도전들을 넉넉하게 이겨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다양한 신앙의 도전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겸손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충성스럽게 그일을 감당합시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실것입니다. 이번 한주 그런 축복의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