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교회 15 벧후 2:1-11 마지막 때가 가까워 지면

2026.07.07 07:0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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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교회 15 벧후 2:1-11 마지막 때가 가까워 지면  찬491/통543   저높은 곳을 향하여

베드로전서는 로마의 네로황제 즉 외부핍박에 대한 믿음을 가르쳤다면 후서는 내부의 거짓교사와 이단을 분별하라고 가르칩니다. 어느것이 더 힘들까요? 둘다 힘들지만, 내부의 핍박이 더 힘듭니다. 가령 세상과 다른 교회가 우리교회를 욕하고 비방하면 우린 더 하나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목자나 장로님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쉽게 무너지죠. 그래서 예수님은 마2,4장에서 마지막때에 이런 거짓교사들이 많아진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살후2장에서 거짓신자들을 구별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말씀안에서 더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과 그것에 대한 권면을 봅시다.

첫째 마지막때에 거짓교사가 많아진다 (1~3절)

벧후2:1 전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몰고 갈 이단(하이레시스)을 몰래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받을 파멸을 재촉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언제나 일어났다고 말하는데 특히 “몰래 끌어들였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들키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하나님의 교회(안산홍)나 신천지(이만희)등은 절대로 불신자를 전도하지 않고 철저히 기존교회를 타켓팅합니다. 왜냐면 기성교회의 단점을 말하면 꼬시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몰래 기존교회에 등록해서 충성된 신자로 짧게는 몇개월, 길게는 몇년동안 영향력있는 리더가 된 후, 몰래 교회의 부정적인 말이나 거짓교리를 가르쳐 교회를 무너뜨리고 신자를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왜 기존 성도들은 이단에게 넘어갈까요? 2절을 보면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이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본받게 해서 결국 방탕한 신앙생활로 이끈답니다. 이것은 당시 육체적 쾌락을 강조했던 “에피쿠로스학파”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서 영적으로 구원받았기에 육체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내주변에는 없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주변에 다양한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제는 술 담배 뿐만 아니라 동성애나 대마초도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이 구원을 못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죄란 원죄와 자범죄로 나눠집니다. 원죄란?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의 뿌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순간 해결 되면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원죄는 해결됬지만 죄의 습관인 “자범죄”가 남아 있습니다. 죄인이었을때 즐기던 육체적 쾌락의 습관들입니다. 가령 교회를 처음 다닐때는 옛날에 하던 더러운 말, 술담배, 싸움, 당짓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배웠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은 천국백성으로서 예수님의 삶을 배워가며, 성도, 즉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전후서의 중요한 핵심포인트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영혼, 주변에 몰래 들어와서 십자가의 길을 부인하고 육체적 쾌락적 신앙으로 이끄는 말이나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별해 내시길 바랍니다.

둘째 죄는 반드시 심판 받는다 (4-6절)

베드로는 거짓이단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3가지 심판에 대한 경고를 말합니다. 하나는 4절에 심판받은 천사, 또 하나는 5절에 심판받은 노아시대 사람들, 마지막 하나는 6절에 심판 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말합니다. 이 3가지 비유는 전부 심판을 말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죄는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라 할찌라도, 그것이 정성들여 만든 당신의 도시나 세계라 할찌라도, 죄는 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과 공의의 하나님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내로남불, 남의 죄는 잘 정죄해도 나, 배우자, 자녀, 내편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념이나 경험, 우리 가정과 회사는 잘못된 걸 알아도 고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끼는 천사라 할찌라도, 정성껏 만든 나의 가정, 도시, 세상이라 할찌라도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왜 이것을 강조할까요? 심판이 더디기 때문입니다. 쾌락과 방탕 그리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지켜가는 사람을 보면 미련하고 바보같다고 표현합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바보같고 미련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됬습니까?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진리안에 거하길 힘쓰시길 바랍니다.

셋째 경건한 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7-11절)

6절까지 보면 무서운 심판을 강조했기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만 강조되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후2:7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 은 구하여 내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죄를 방관하거나 용납하는게 아니라 죄가운데서 고민하고 의로움을 향해 나가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끌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을 창녀를 구해주셨고, 기생이었던 라합을 살려주셨고, 오늘 믿음의 사람이면서도 물질주의를 선택했던 롯을 끄집어 내주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왜 이걸 8절과 9절에 강조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핍박과 고난속에도 거룩한 삶을 지켜가는 신약교회 성도들을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땅의 모든 교회를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존맥아더 목사님이 펜데믹기간에 모이지 말라고 했는데 모여서 예배를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수천만의 교회가 있었지만 단 한개의 교회만 주일에 계속해서 모이며 예배했습니다. 이것에대해 법적인 제제를 받고 수많은 교회들은 오히려 이교회를 비방했습니다. 그런데 펜데믹이 끝난후 주정부를 상대로 이교회가 승소했습니다. 저는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의 규범이 성경의 진리에 위반될때 우리는 과연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나 잠수함은 엄청난 수압을 받지만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그이유는 내부의 압력이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거짓 가르침과 음란한 문화의 수압이 우리를 압박해 올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과 말씀의 결단(내부 압력)이 살아있다면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것입니다. 오늘도 그 예수를 붙잡고 잠수함처럼 세상속을 누비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기도: 오늘도 세상의 쾌락과 방탕, 물질 만능주의의 속삭임을 잘 분별하고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성도로 살아갈수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게 하소서

중보기도(화:목장/목자/목녀/VIP): 모든 목장의 나눔속에 말씀과 기도를 통한 믿음을 주시고, 이번주에도 세상을 이겨나가는 강한 목장들이 되게 하소서 모든 목자와 목녀들에게 힘을 주시고 VIP를 구원으로 이끄는 목장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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