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교회 2 벧전 1:3-12 고난을 이기는 교회
2026.05.22 14:29
예수인교회
세상을 이기는 교회 2 벧전 1:3-12 고난을 이기는 교회 찬 546/ 통 399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제자, 사도 베드로가 당시 네로 황제의 통치 속에서 고통 받고 박해 받는 형제들에게,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견뎌내며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위로와 격려와 도전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베드로전서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고난은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와 고난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살지 않기에, 세상적 기준을 따르지 않기에 세상과 대립적인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고난과 박해 등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산 소망과 유업을 붙잡아야 합니다.(3-4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 중에도 붙잡아야 할 가치는 바로 ‘산 소망과 썩지 않는 유업’이라고 했습니다. 즉 눈앞에 있는 죽은 희망, 썩어질 것들, 더러운 것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살아있는 소망과 영원한 유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산 소망은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망 때문에 죽음이라는 박해도,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베드로는 소망을 가지라고, 잠시 동안이라며 산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게 될 유업은 하늘의 영원한 유업,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부패하지 않고, 죄나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고 그 영광과 아름다움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신비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눈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눈과 귀가 열려서 부활 소망을 발견하시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어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발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고난을 통하여 귀한 존재로 만드십니다.(5-7절)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3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지은 죄로 인한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선택하였기에 받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둘째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들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합당하고 존귀하게 만드시기 위한 훈련 및 테스트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베드로가 6절에 말하는 내용과 통합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말씀으로 다시 가면 왜 즐거워할 수 있나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테스트를 잘 마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잠시 잃게 되는 것? 고통 받는 것? 참을 수 있습니다. 만약 1시간 욕하는 것 참으면 10억 준다고 하면 참습니까, 못 참습니까? 참습니다.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자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매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확인해야 합니다.(8-12절)
우리가 지금의 고난과 어려움을 받으면서 죽고 난 후 부활의 소망과 죽은 후 얻게 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만으로 이 순간의 고통을 견디기가 쉬울까요? 아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선택해주셔서 구원해주신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만달란트의 빚을 그냥 이유 없이 탕감해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잊으면 지금의 고난과 고통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한 형벌과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고난을 잘 받아야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우리가, 이미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을 잘 통과해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은 우리에게 은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도 고통스럽게만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더 존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도 주십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받는 고난과 시련,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Why?를 계속 묻다보면 이상한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욥기에서 욥은 알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욥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욥은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그 시간을 참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질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욥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하박국 3:17-18절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니 갑자기 불평과 원망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눈을 내 앞에 있는 것을 보기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때 소망과 기쁨이 우리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말씀기도: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매일 기억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예수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선교지/모든예배): 목장, 새벽, 주일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5/24 성령강림주일예배를 은혜롭게 드리게 하소서, 15개의 선교지의 기도를 기억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