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 27 히 11:17-22 믿음의 태도

2026.04.21 16:4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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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 27 히 11:17-22 믿음의 태도 찬 292/통 415 주 없이 살 수 없네

성경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에서 요구하는 2가지가 있다면 아마 ‘믿음’과 ‘사랑’일 것입니다. 이 2가지의 특징은 두 개 모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행동’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삶에서 행동으로 증명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믿음장이라 불리우는 성경과 사랑장이라 불리우는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서 11장과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이 두 성경의 특징이 바로 믿음과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여러 믿음의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 예수님을 믿으며 그 믿음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살아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전능함)19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3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약속하셨고,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빨리 자녀가 생겨서 낳아야 하는데 자식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이만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100세에 귀한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번제는 동물의 뼈와 살을 다 발라냅니다. 그리고 전부 태워야 하는 것이 번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다고 나옵니다. 그것도 기꺼이 바치려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서 행동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의 크기만큼 믿음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대로 말하면 나의 믿음의 행동을 보면 나의 믿음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지금 이 순간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살아계심) 20절

이삭의 삶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삶에 비해 성경에서는 아주 짧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100세에 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게 되었고, 잘 크고 있는데 아버지가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물론 그 순간 하나님의 직접적인 체험을 했지만 그 순간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을 파놓으면 빼앗기고, 파놓으면 빼앗기는 일들을 겪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자식이 생기지 않아서 기도하다가 야곱과 에서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장자에게 축복하려고 할 때 야곱의 꾀로 장자에게 해야 하는 축복을 야곱이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부모를 속이며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냐며 불같이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축복 기도를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계획과 다르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매 순간 개입하셔서 일해 오셨음을 경험했기에 믿음으로 이번 일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개입해 일하셨음을 믿음으로 각각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서 나의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삶 속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상황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안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약속을 지키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신실하심) 22절

요셉이 꾼 꿈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Vision이 아니라 진짜 잠을 자다가 꾼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려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된 후 가뭄 때문에 형제들이 곡식을 받으러 왔을 때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자신의 삶이 너무도 비참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의 의미와 자신이 그런 일들을 당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총리로 성공했으니까 이런 말을 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을 보면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선택했던 신실했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성실했고 신실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했던 요셉이 무엇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을까요? 바로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왜요?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신실하게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요셉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자신의 자손들에게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자신의 자손들에게 애굽에서 나가게 될 때 자신의 뼈를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요? 그냥 던져본 말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모습을 ‘믿음으로’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이 3가지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함께하신 그 하나님이, 그때 일하셨던 신실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여전히 변함없이 신실하게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이 순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고 마치 점점 나빠져가는 것 같지만 이삭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시다는 것이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어가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기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성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중보기도(화:목장/환우/VIP): 모든 목장과 예배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회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병든자들을 치유케 하소서, 가정마다 구원의 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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