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 4일차 빌 2:5-8 위대한 선택, 십자가의 길

2026.04.03 12:14

예수인교회

조회 수61

고난주간 특새 4일차 빌 2:5-8 위대한 선택, 십자가의 길 찬 425/통 217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면서 나타내신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두고 “하나님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최고치의 사랑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위대한 선택, 십자가의 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국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랑을 보여주셨는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든 사랑을 압축해서 뽑아낸다면 바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사랑하시기 위해서 위대한 선택, 십자가를 선택하셨을 때 보여주셨던 사랑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먼저 찾아가는 사랑”입니다.(7a절)

어느 신학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는 “추적자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언제나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서 숨어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삶을 살펴볼 때에도 야곱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항상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많이 하는 착각 중에 하나가,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예배를 잘해서, 내가 좋은 일을 해서, 내가 그럴만한 행동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주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가고 있는 상황에 예수님이 먼저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구원받을 어떤 행동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직 죄인이었을 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의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듯이, 우리가 먼저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랑을 받을 만해서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먼저 찾아가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십자가는 ‘내려오는 사랑’입니다.(7b절)

성경의 사랑은 항상 ‘내려오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군가는 ‘위대한 하강’이라는 아주 멋진 표현을 했습니다. 세상은 상승하고 싶어하고, 부유해지고 싶어하고, 더 큰 것을 추구하고, 섬김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성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낮아지라고, 작은 자가 되라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가야 예수님이 주인의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내가 내려가야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수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더 큰 자인지 싸우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위대한 선택,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낮아지라고요. 예수님이 위대한 내려오심을 보여주셨기에 우리도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서 섬기고, 작은 자가 되어서 먼저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전히 높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기꺼이 주님이 걸으셨던 낮아지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믿음으로 걸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십자가는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하는 사랑합니다.(8절)

십자가의 길은 참으로 불편합니다. 그러나 요즘 모든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싫어합니다. 십자가는 불편한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에요. 교회 와서 편한 사람은요, 오직 VIP만 있어요. 그리고 교회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직분의 책임이 크면 클수록 불편한 일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것이 아주 정상적이고 아주 잘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편할까요?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진짜 죽을뻔 했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로 드린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먹어도 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먹지 말라고 합니다. 아니 먹어도 되는데 유익이 되지 않으면 먹지 말래요. 이런 불편함을 왜 감수합니까? 왜 예수님도, 사도바울도, 열두 제자들도 복음을 빨리 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는데, 왜 미련하게, 느리게, 인기 있는 방법이 아닌 것으로 복음을 전할까요?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니까요. 여러분 우리가 불편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내가 편하려고 하면, VIP들이 불편한 것입니다. 목회자가 편하려고하면요, 성도들이 불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불편함과 고통과 고난을 감당하셨기에 우리는 지금 죄의 삯을 받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나 대신 불편함을 겪으신 예수님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불편함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고난 주간을 힘겹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신앙생활 자체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고, 왜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나요? 그것은 첫째는 이렇게 사는 삶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십자가의 길만이 사람을 살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멸망당할 위치에서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얻었듯이,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밖에 없고, 우리는 예수님이 보이셨던 그 길을 뒤 따라가며 복음을 전하고, 섬길 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십자가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 아닌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삶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위대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셨던 십자가의 길, 비록 그 길이 실패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과는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성공의 길이고, 이기는 길이고, 가장 빠른 길이고, 예수님이 인정해주시는 길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길인 줄 믿습니다.

말씀기도: 우리가 위대한 선택,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찾아가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높아지려 하지 않고 스스로 작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하소서, 편안함 보다는 자발적인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금:선교지/모든예배): 모든 모임과 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고난주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하게 하소서, 15개 선교지에 필요를 채워주소서, 부활절 감사연합예배와 목장별 찬양제가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