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 3일차 빌 2:5-8 자기비움은 포기에서 시작합니다.

2026.04.02 14:3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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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새 3일차 빌 2:5-8 자기비움은 포기에서 시작합니다. 찬 320장/ 통 350 나의 죄를 정케하사

오늘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비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비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빌립보서에서는 자기를 비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로 ‘포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포기할 것에 대해서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처음으로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체를 포기하고, 동등함을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포기하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포기한 것입니다. 위대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기비움을 위해서 포기하셨던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포기하셨는지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비움은 조건 내세우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7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하시기에 충분히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것을 알기에 아니 믿기에 기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까지 가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라!’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마도 하나님께 여러 조건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조건을 내걸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조건 내세우시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셨고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까지 가셨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까지 하셨습니다. 그 자리가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그것도 멋있게 죽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셨지만, 우리는 예수님한테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런 자리에 가셨고,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말없이 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조건들이 있습니다. 많은 셋업이 필요합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조건을 제시합니다. 내 조건을 수용해주시면 우리는 그때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비움은 그런 당연한 조건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조건은 포기하는 것, 그것이 자기 비움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조건 없이 시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자기비움은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6절)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권리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이 먼저였습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사역들을 보면 충분한 인기와 명예와 부를 가지실 수 있었습니다.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것 하나 그 권리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권리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가장 낮은 곳에서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으로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오늘 혹시 내 안에 이런 허영이 있다면, 자만이 있다면, 교만함이 있다면, 내가 영광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런 마음과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다른 곳에서 위로와 힘 얻으려고 하지 마시고, 나를 비우고, 나의 권리를 포기했지만 그 안에 예수의 충만함으로 위로와 힘을 얻으시는 예수인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자기비움은 나의 결정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7절)

이것은 무슨 말씀일까요?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종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셨다는 것입니다.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은 가난한 모습, 노예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 노예의 속성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종의 가장 큰 속성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자신의 결정권을 포기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겟세마네입니다. “주님 이 잔, 십자가를 옮길 수만 있다면 옮겨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이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자기비움의 시작이 ‘포기’였다면 그 비워진 곳에 ‘순종’으로 채워야 합니다. 자기비움의 완성은 바로 ‘순종’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에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순종하심으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당연한 권리, 특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순종하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충분히 선택하시고 결정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기로 결단한 우리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추구해야 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요. 오늘 이 시간 기도하시며 결단할 때 성령님께 의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기꺼이 결단하고 살아내실 수 있는 예수인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기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조건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나의 당연한 권리를 예수님을 위하여 포기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나의 결정권을 믿음으로 포기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목:지도자들/가정과 나라): 교회 지도자들에게 ‘능력과 은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각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미국과 한국에 하나님의 섭리가 일어나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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